한국 최초의 집시 바이올리니스트 뮤지컬배우, 모델로도 맹활약 중 싱글 ‘젤러트리’, 9년 만에 햇빛
고해소에서 신부님이 성도의 고해성사를 기다립니다. 가려진 창 너머에는 한 남자가 있습니다. 그런데 남자는 느닷없이 바이올린을 집어 들고는 열정적으로 연주를 시작합니다. 신부가 무거운 얼굴로 연주에 귀를 기울입니다. 마치 남자의 고해성사를 듣듯 말이죠.
바이올리니스트 KoN(콘)이 최근 발매한 싱글앨범의 뮤직비디오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곡명은 ‘젤러트리(Zealotry)’. 열광 또는 열정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라고 하지요.
서울예술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기악과라는 정통 클래식 코스를 밟았지만 KoN에게는 늘 ‘한국 최초의 집시 바이올리니스트’라는 수식어가 따라 다닙니다. 실은 직업이 더 있습니다. ‘모비딕’, ‘페임’, ‘오필리어’와 같은 뮤지컬 작품에 배우로 출연했죠. 모델로도 활동합니다. 최근에는 디자이너 이상봉 패션쇼에서 모델워킹과 바이올린 연주를 결합한 퍼포먼스로 큰 호응을 얻기도 했습니다. 지난 9월에는 미국 뉴욕 패션쇼에서 당당하게 런웨이를 걸었죠.
연주뿐만 아니라 노래와 ‘몸’도 되는 아티스트입니다.
KoN은 바이올린 연주자이자 작곡가이기도 합니다. 이번에 선보인 젤러트리 역시 그가 쓴 곡이죠. 이 곡에는 사연이 있습니다. 사실 이 곡은 데뷔(2010년)하기도 전, 무려 9년 전에 작곡되었습니다. 원래 데뷔앨범인 1집 ‘누에보 집시’에 수록될 예정이었는데 이런저런 사연으로 곡의 완성이 지연되는 바람에 막판에 빠져버린 비운의 걸작이었죠.
이 곡에 대한 KoN의 애정은 앨범제작을 위해 끌어들인 인물들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팝의 명장 데이비드 보위의 앨범으로 그래미상을 탄 세계적인 마스터링 엔지니어 조 라포타가 참여해 고품격 사운드를 완성해냈습니다. 첼리스트이기도 한 성승한 감독이 뮤직비디오의 감독을 맡았고요. CF, 드라마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김자현 음악감독이 화려한 편곡의 주인공입니다.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신부님은 KoN의 2집 앨범과 싱글 ‘탱고 오브 빅토리’에서 멋진 연주를 들려준 아코디언 연주자 알렉산더 쉐이킨이라고 하네요.
‘젤러트리’ 뮤직비디오의 후반부에서 KoN은 사제복을 입고 텅 빈 성당에서 그야말로 ‘젤러트리한’ 연주를 보여주고 들려줍니다. 그리고 다시 화면은 고해소로 이동해 장렬하게 마침표를 찍게 되죠.
KoN의 ‘젤러트리’를 좀 더 느낌있게 감상할 수 있는 팁. 바닥을 짚은 손의 ‘예민한 아름다움’을 놓치지 마시길. 시종일관 눈을 감고 연주하는 KoN이 딱 한 번 눈을 뜨는 찰나의 순간도 재미삼아 찾아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