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고레에다 히로카즈 지음/이지수 옮김/448쪽·1만8000원·바다출판사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55)과 나눴던 8년 전 짤막한 대화. 한동안 영화 담당 기자로서 취재했던 경험을 돌이킬 때 가장 즐겁게 되감는 시간 중 하나다. 말없이 잠깐 차 한잔 함께했을 뿐인데 큰 위로가 되는 친구. 고레에다의 영화들은 그런 이를 닮았다.
기획부터 출간까지 8년이 걸린 첫 자서전이다. 그는 서문에서 “TV 방언이 밴 변칙적 영화 언어를 쓰는, 순수 영화인이 아닌 영화감독”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데뷔작 ‘환상의 빛’(1995년)부터 이탈리아 베니스 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되고 4년 전 프랑스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을 받은 감독으로 참말 박한 자평이다.
조곤조곤한 목소리를 그대로 옮긴 듯한 문장마다 창작의 뿌리에 대한 겸허한 자각이 스며 있다. 와세다대에서 문학을 전공한 그의 첫 직업은 TV 다큐멘터리 연출가였다. “TV라는 매체가 무엇인지 질문하는 과감한 실험의 시대”였던 어린 시절 기억을 소중히 끌어안고 성장한 그가 영상 작업을 통해 추구해온 가치가 무엇인지 하나하나 확인하게 하는 책이다.
스물아홉 살에 찍은 그의 두 번째 다큐멘터리는 30여 년간 복지행정 개선에 몰두해온 50대 관료가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 좌절해 자살한 이야기를 다뤘다. 남편을 잃은 아내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고레에다 감독은 카메라와 녹음기부터 들이밀지 않았다. 필요한 메모는 잠시 화장실에 들어가 적었다.
“가슴속 슬픔에 대해 누군가에게 말할 수 있다는 점이 인간의 씩씩함이자 아름다움 아닐까요. 그 슬픔을 받아주는 쪽이 될 수 있었던 체험은 제게 매우 귀중했습니다. 그 뒤로 찍은 제 많은 작품은 누군가 또는 저 자신의 슬픔을 치유하는 과정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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