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철 “치키치키 차카차카 부른 아저씨야 했더니 ‘에이, 뻥’ 하던데요”

‘작은 거인’ 김수철 40년 음악인생 책 출간

“‘치키치키 차카차카’는 꼬마들의 양치질 소리에서 착안한 거예요.” 4일 오전 서울 마포구 음반점 ‘팝시페텔’에서 만난 김수철은 “젊을 땐 키가 164cm였는데 1cm 줄었다”며 아이처럼 웃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적잖은 힙합 팬과 평론가들이 홍서범의 ‘김삿갓’(1989년)을 한국 랩의 효시로 꼽는다. ‘김삿갓’보다 앞선 1988년 영화 ‘칠수와 만수’.

거기 등장한 곡 ‘무엇이 변했나’를 들어볼 일이다. 음악 감독 김수철(60)이 만들고 부른 것. 통통 튀는 베이스기타 라인 위로

김수철이 빠르게 내뱉는 노랫말, ‘높은 빌딩 자꾸만 하늘을 가리고/보고 싶은 사람들은 떠나고 없구나…’는 분명 랩이다.》
　

“서구의 최신 음악 트렌드에 그때도 관심이 많았어요. 저도 랩이란 걸 꼭 노래에 넣어보고 싶었죠.”

활짝. 특유의 다람쥐 같은 얼굴 가득 웃음이 번진다. 최근 만난 김수철은 “랩이 지금도 너무너무 좋다. 래퍼 도끼, 비와이를 좋아한다”고 했다. 음악 인생 40주년을 맞아 그가 최근 낸 첫 책을 건넸다. ‘작은 거인 김수철의 음악 이야기’(까치)다.

‘치키치키 차카차카’ ‘젊은 그대’ ‘나도야 간다’ ‘정신 차려’ ‘별리’ ‘못다 핀 꽃 한 송이’…. 한국인의 가슴에 박힌 노래들을 만든 뒷이야기가 빼곡하다. 86 아시아경기, 88 서울올림픽 음악, 국내 최초로 100만 장 이상 팔린 영화 사운드트랙인 ‘서편제’…. 록에 미쳤던 청년은 불현듯 국악이 궁금했다. 무작정 판소리 음반을 틀어놓고 듣는답시고 꾸벅꾸벅 졸았다. 그러던 청년이 끝내 국악과 현대음악을 결합해낸 이야기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미치면 파는’ 성격은 그의 미덕이다. 이 책을 위해 김수철은 올 초부터 원고지와 씨름했다. “40주년이 지나면 돌아볼 기회가 없을 것 같았거든요. 자료 조사까지 하며 매일 매달렸죠.”

그가 꼽는 음악인생 최대 분기점은 1995년 겨울, 경남 합천 해인사에서 팔만대장경 수장고 안에 발을 디딘 순간이다. 팔만대장경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자 불교계에서 음악 작곡을 의뢰했고, 대장경의 신비를 직접 체험한 그는 달고 살던 술, 담배도 끊었다. 오전 3시 반에 일어나 매일 작곡하며 2년 반을 투신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종교는 없다”는 그는 “4악장은 성경의 베드로를 상상하며 썼다”고 했다. “팔만대장경은 인류 전체의 유산이라 이야기하고 싶었거든요.”

그때 시작한 금연과 금주가 아직 이어진다. “가끔 안성기 배철수 형과 술자리를 가져도 저는 물 마시며 버팁니다.” 국악 공부, 기타 연습을 하루도 거르지 않는다. “요즘은 궁중음악을 깊이 연구하고 있어요.”

그간 각종 강의와 영화(임권택의 ‘화장’·2015년), 드라마(2016년 ‘그래, 그런 거야’, 올해 ‘우리 갑순이’) 음악 작업을 했지만 15년째 새 앨범 소식은 없다. “가요, 록, 국악을 100곡 넘게 만들어뒀어요. 앨범 10장 분량은 되는데 발표를 못 했네요. 아이돌 중심의 가요계에 내놓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그는 케이팝의 선전에 감개무량하다면서도 “한류, 유행은 말 그대로 흘러가는 것이다. 국악 현대화를 병행해 우리의 진짜 문화적 힘을 알려야 한다”고 했다.

자신의 ‘불림소리’와 ‘팔만대장경’을 그는 평생 이어갈 연작이라 했다. “‘불림소리 3’와 ‘팔만대장경 2’, 그리고 밴드 ‘작은 거인’의 근 40년 만의 신작도 구상 중입니다. 기회가 오겠죠.”

작은 거인. 그의 별명이다. “얼마 전, 처음 보는 꼬마한테 ‘‘치키치키 차카차카’ 부른 아저씨가 나야’라고 했더니 ‘에이, 뻥. 말도 안 돼!’ 하더군요.” 다시 활짝 웃는 그에게서 영화 ‘고래사냥’(1984년) 속 청년 병태가 보였다. 꼬마 김수철이 보였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