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마데우스’에서 모차르트가 마지막 길을 가던 장면을 기억하시는지요. 매서운 바람과 눈발이 휘날리던 날, 1791년 12월 5일이었습니다. 모차르트의 시신이 관도 없이 차가운 구덩이에 떨어지는 장면에서 관객들은 눈물을 훔쳤죠. 오늘이 그가 세상을 떠나고 226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그런데 영화가 보여주지 않는 장면이 있습니다. 모차르트의 부인 콘스탄체는 그 뒤 어떻게 되었을까요?
모차르트의 전기에 흔히 묘사되는 얘기가 콘스탄체는 낭비벽이 심하고 판단력이 흐려 남편을 제대로 간수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영화 ‘아마데우스’에 묘사된 경박한 콘스탄체도 이런 평가에 바탕을 둔 모습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모차르트 사후 그의 모습을 살펴보면 생각이 달라집니다.
콘스탄체는 죽은 남편의 곡들로 콘서트를 열어 모차르트 생전보다도 나은 수입을 거뒀고, 남편의 악보를 정리해 출판했고 두 아들을 프라하에 보내 좋은 교육을 받게 했습니다. 모차르트가 죽고 6년 뒤, 콘스탄체는 덴마크 외교관인 니센을 만나 11년 뒤 결혼했습니다. 니센은 온화하고 진지한 신사였다고 합니다. 그는 아내 콘스탄체와 함께 모차르트의 생애를 전기로 정리했고, 아내와 함께 모차르트의 고향 잘츠부르크로 이사해 죽을 때까지 살았습니다.
‘그로브 음악사전’은 콘스탄체에 대해 “지성과 음악적 이해가 없으며 게으른 아내였다는 평가는 모든 면에서 잘못된 것”이라고 썼습니다. 모차르트의 무덤이 오늘날 남아 있지 않다는 점에서 콘스탄체의 무심함을 지적하는 사람도 있지만 여러 구의 시신을 함께 매장하는 것은 당시 오스트리아 제국에서 전염병이 유행할 때 흔히 행해지던 관습이었습니다.
모차르트의 두 아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큰아들은 공무원, 작은아들 크사버는 아버지를 따라 음악가가 되었고 당대에 제법 명성도 누렸습니다. 두 사람 모두 아이를 남기지 않아서 모차르트의 후손은 아들 대에서 끊어졌습니다. 콘스탄체와 니센 사이에 아이는 없었습니다. 정리하면, 아이들을 잘 키웠고 금전 감각도 있었으며 모차르트에 대한 기억도 잘 정리했던 콘스탄체에 대해 ‘경박하다’ ‘생각없다’는 누명은 이제 거두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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