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12월11일은 산악인 허영호의 프로필에 ‘7대륙 최고봉 정복의 날’로 기록된다. 그는 그러나 당시 7대륙 최고봉에 오른 소감을 물었을 때 “나는 정복자가 아니다”라고 답했다. 그가 덧붙인 말은 “산은 나의 신이다”였다(동아일보 1995년 12월28일자 15면)
허영호 씨는 이날 남극 대륙 최고봉인 빈슨 매시프(4897m) 등정에 성공했다. 1987년 12월 세계 최고봉이자 3대 극점 중 하나인 에베레스트 등정을 시작으로 1992년 남미대륙 아콩가와, 북미대륙 매킨리, 아프리카 킬리만자로에 이어 1994년 남극점, 오세아니아대륙 칼스텐츠, 1995년 북극점, 유럽대륙 엘부르즈를 차례로 오른 뒤였다. 세계 3극점과 7대륙 최고봉을 모두 밟은 산악인은 허영호가 세계 처음이었다.
고교 1학년 때 누나를 따라 고향 제천의 금수산을 오른 게 첫 등반이다. 생명이 위협에 처했던 일도 숱하게 겪어, 빈슨 매시프를 오른 뒤 인터뷰에서는 “제트기류에 휩쓸려 100여m나 날아간 일, 빙괴에 추락했던 일 등의 기억이 생생하다”고 털어놓았다. 빈슨 매시프를 오를 때도 정상을 앞두고 300m 설벽을 오를 때 몸을 가누기 어려운 강풍에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밝히기도 했다(동아일보 1995년 12월28일자 15면).
빈슨 매시프에 오르기 7개월 전인 그해 5월 북극점을 밟았다. 북극점은 도달하기가 어려운 곳이다. 유빙 때문이다. 1990년 첫 탐험 때는 12시간을 걸었는데도 출발 때보다 200m 전진한 정도였다. 이듬해에도 북극점에 도전했지만 실패, 1995년 세 번째 도전 끝에 북극점에 닿을 수 있었다.
“매번 난관에 부닥칠 때마다 ‘왜 이 짓을 하나’ 하는 후회에 치를 떨지만 정점에 서면 또다시 다음 정복지를 구상하게 됩니다.”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대로 그의 도전은 계속돼 왔다. 63세인 그는 지난 5월 에베레스트를 6번째로 올랐다. 국내 최다 에베레스트 등정 기록이자 국내 현역 최고령 기록이었다. 어렸을 적 꿈이 비행사였다는 그는 최근 ‘경비행기 세계 일주’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모든 것이 새로운 체험을 하고 싶다”(동아일보 2005년 11월8일자 29면)는 그의 꿈은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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