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매거진]미쉐린 두번째 서울편 발간… “100년 전통에 걸맞은 책임감 가져야”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14일 03시 00분


박홍인의 미식견문록

[1]미쉐린 1스타 식당 도사의 요리.[2]도사의 백승욱 셰프(미쉐린 1스타).바앤다이닝 제공
[1]미쉐린 1스타 식당 도사의 요리.[2]도사의 백승욱 셰프(미쉐린 1스타).바앤다이닝 제공
“서울은 무한한 가능성과 재능을 가진 곳이라 생각합니다. 일 때문에 전 세계를 여행하는데, 미쉐린가이드 서울 발행을 계기로 서울이 국제적으로 더 많은 조명을 받으며 세계 미식 무대에 당당히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체감합니다.”

서울을 뜨겁게 달궜던 미쉐린 가이드 첫 에디션이 발간된 지 벌써 1년, 여전히 ‘익명성’과 ‘역사성’을 내세우는 미쉐린 가이드는 지난달 8일, 두 번째 서울 편을 발간했다. 이번 작업을 이끈 마이클 엘리스 인터내셔널 디렉터는 첫해보다 사뭇 여유 있는 소감을 밝혔다. “서울 평가원들 모두 작업 내내 기쁜 시간을 보냈습니다. 전통에서 혁신까지, 한식에서 유러피안, 중식, 일식, 이노베이티브 퀴진(요리)까지 다양성이 넘실대는 서울은 미식 여행지로 손색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인력을 새로 뽑으랴 교육시키랴 평가하랴 기간이 충분치 않았음을 피력했던 지난해에 비하면 1년이란 시간은 제작진에게 어느 정도 영양분이 된 듯하다.

그렇다면 2018년 결과는 어떠한가? 지난해와 어떻게 달라졌을까? 2018년 미쉐린 스타(별)를 받은 식당은 총 24곳. 규모는 지난해와 같지만, 별의 합계는 총 32개로 지난해보다 1개 늘었다. 이미 인터넷을 타고 충분히 알려진 식당 리스트를 여기에 다시 나열할 생각은 없다. 별의 주인공이 누구인지가 가이드에서는 꽃일지 모르나 두 번째를 지나 세 번째, 열 번째…국제 미식 무대로 항해를 이어갈 승객인 ‘서울’ 입장에서는 안전사고 없이 순항할지, 여정은 즐거운지, 목적지에 잘 다다를지 따위의 ‘가이드 역할’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3]정식당의 임정식 셰프(미쉐린 
2스타).[4]리스토란테 에오의 어윤권 셰프(미쉐린 1스타).[5]주옥의 신창호 셰프(미쉐린 1스타).바앤다이닝 제공
[3]정식당의 임정식 셰프(미쉐린 2스타).[4]리스토란테 에오의 어윤권 셰프(미쉐린 1스타).[5]주옥의 신창호 셰프(미쉐린 1스타).바앤다이닝 제공

올해 발표에서 가장 괄목할 만한 부분은, 무엇보다도 ‘정식당’과 ‘코지마’가 한 단계 상승해 2스타가 총 4곳으로 늘어났고, 1스타에서도 ‘주옥’ ‘테이블 포포’ 등 평소 좋은 평가를 받던 4곳이 추가되었다는 점이다. 한식이거나 한식을 기본으로 한 창작 요리의 성과가 비교적 좋다.

미쉐린이 국제적인 일관성과 공정성을 강조하는 가이드인만큼, 서울편의 결과가 얼마나 성공적인지 보려면 해외 사례와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래도 지난해 서울에서처럼 첫 에디션을 가진 상하이편이 여러모로 비견하기 좋은 상대다. 올해 9월 발표된 2018 상하이의 미쉐린 스타는 총 30곳. 지난해에 비해 4곳이 늘어났다. 내용 면에서는 부동의 자리를 지킨 6곳의 2스타와 달리 ‘울트라 바이올렛’이 한 단계 상승해 총 2곳의 3스타가 선정됐고, 4곳의 신예를 포함해 22곳의 1스타를 낳았다. 우연 같지만 흡사한 양상이다. 헤드라인을 뽑자면 ‘서울 새로운 2스타 2곳 선정’, ‘상하이 새로운 3스타 1곳 선정’, ‘서울, 상하이 모두 신예 1스타 4곳 진입’이다. 더욱이 상하이는 이번 결과로 ‘미쉐린 스타 수는 서울보다 많지만 3스타 수는 작다’는 불명예를 씻으며 동일하게 2곳을 기록했다. 결과에서 두 도시의 변화가 놀랄 만큼 평행선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더 흥미롭다. 상하이는 신규 별 개수만큼 규모가 늘었지만 서울은 동일하다는 점이다. 즉 늘어난 개수만큼 제외되었다는 의미. 빕 구르망에서도 상하이는 단지 3곳이 추가되어 총 27곳인 데 비해 서울은 17곳이 추가되어 지난해보다 전체로는 12곳이 많은 48곳이 소개됐다. 엘리스가 “상하이 미식 시장은 역동적이다”라고 밝힌 소감에 비해 상하이의 변화는 서울보다 한참 정지해 있다. 다시 말해 서울의 들쑥날쑥함이 훨씬 역동적이다. 이유가 무엇일까? 미쉐린 가이드 측이 밝힌 “신규 빕 구르망 17곳은 평가원들이 서울의 거리를 거닐다 발견한 곳”이라는 설명은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조사된 리스트에 의존하기보다 현장을 들여다보게 됐다는 긍정적인 측면, 한정된 일정과 인력으로 서울을 훑어보다 보니 늦게 발견된 곳들이 많더라는 우려스러운 측면. 그런데 1년 만에 취소되거나 갑자기 확 늘어나거나 하는 경우의 수가 유사 문화권보다도 많다는 사실은 아직 코끼리 다리 한쪽 구석만 만지는 중이라는 우려스러운 유추에 어느 정도 무게를 더한다.
미쉐린 1스타 식당 주옥의 요리. 바앤다이닝 제공
미쉐린 1스타 식당 주옥의 요리. 바앤다이닝 제공


최근의 미쉐린 가이드에 대한 비판은 대개 이러한 ‘우려’와 연관이 있다. 평가원들이 전원 풀타임 유급 직원으로서 철저한 ‘익명성’을 통한 ‘공정성’ 실현을 최고의 가치로 내세우고 있으나, 정작 비판의 대상은 과정이 아닌 ‘결과’다. 아무리 과정이 공정하다고 한들 가이드의 목적을 고려하면 결과에 대한 모호성은 치명적이다. 세계의 관심과 소통이 아직 고픈 우리 미식 시장에 미쉐린 가이드가 작은 연결고리가 되어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동시에 불안정한 결과가 주는 선의의 피해는 달갑지 않다. 그런 점에서 공정성 이외에도 얼마나 많은 평가원이 충분히 판단하느냐라는 질문이 생긴다.

익숙한 요리권이 아닌 낯선 미식 문화의 새로운 도시를 평가하려면 절대적인 기간이나 절대적인 수의 전문 조사원이 필요하다. 기간이야 이제 막 발간을 시작한 단계여서 유럽만 하진 못하다고 해도 평가단의 규모는 익명성 못지않게 중요하다. 최근 레스토랑 평가 브랜드 중 빠른 속도로 국제적 영향력을 갖추며 성장한 사례들이 조사원의 규모, 수장급 평가원의 전문성을 숨기지 않고 밝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즉, “완벽하지는 않지만 우리는 이 정도 규모로 이런 방법, 일정을 거쳐 이런 정도의 전문가가 함께 하는 평가서입니다”라고 밝힘으로써 신뢰를 구축해가는 것이다. 평가원들이 누군지를 일일이 밝힐 필요는 없다. 다만 평가원 수와 평가 기간 정도를 밝히는 것은 영향력 있는 가이드로서 조사 대상에 대해 갖춰야 할 ‘예의’가 아닐까. 하지만 미쉐린은 여전히 이 점에 대해서는 함구한다. 책의 끝머리에 짧게 소개된 호텔 리스트만 보더라도 기준이 모호하다. 국내 등급제에서 특1급으로 인정받은 곳들조차 제대로 포함되어 있지 않다.

가이드에 소개된 레스토랑의 설명도 미진함을 피하기 어려운 건 마찬가지다. 전문적인 평가원이 철저한 공정성을 유지하며 비밀스럽게 선정하는 만큼, 선택된 곳에 대한 정당한 이유는 결과물이자 리포트인 ‘가이드’에 어느 정도 설명되어 있어야 한다. 미쉐린 가이드의 결과물은 ‘스타’가 아니라 가이드다. 하지만 정작, 가이드에 적시된 글에서는 평가원의 예리하고도 전문적인 평가를 찾아보기 어렵다. 3스타를 받은 ‘가온’의 원고만 보더라도 운영자가 누구인지와 실내 인테리어, 소품, 별실, 공간 칭찬이 거의 전부다. 요리에 대한 코멘트는 단 한 줄. 하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두루뭉술한 이야기다. 굳이 미쉐린 가이드가 아니더라도 국내 매거진이나 가이드, 아니 인터넷 블로그 검색만 해도 볼 수 있는 내용들이 조합되어 있다. ‘라연’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3스타가 이 정도이니 나머지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인테리어, 서비스 그 어느 것에도 휘둘리지 않고 오직 요리로만 평가한다는 미쉐린의 그 자부심을 원고에서는 찾아보기가 정말 어렵다. 서울의 미식 문화가 궁금해서 이 책을 찾아볼 외국인들에게 과연 무엇이 전달될 수 있을까. 순위나 리스트를 자극적으로 홍보하는 그런 가이드북 따위와 차별되는 100여 년 전통의 전문적인 콘텐츠, 레스토랑들이 심혈을 기울이며 선보인 비범한 요리에 대한 콘텐츠를 읽을 수 없다면 그들이 말한 공정성과 전문성, 엄격한 기준을 독자인 우리는 어디서 느껴야 하는 것일까.

그렇다고 마냥 가이드의 완벽성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정답을 찾는 역할은 ‘안내서(GUIDE)’가 아니라 ‘사전(DICTIONARY)’일 테니까. 다만 미쉐린 가이드 애독자로서 100여 년간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 온 브랜드의 가치에 걸맞은 시대적 기대감을 가질 뿐이다. 롤렉스, 라이카, 루이 비통처럼 세월이 흘러도 트렌드를 넘어 존재하는 브랜드 하나쯤은 미식 가이드에서 나올 수도 있으니 말이다.

우리의 역할도 중요하다. 승객의 안전띠 의무가 있는 것처럼, 가이드에 탑승한 우리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바로 ‘열린 마음’. 우리 미식 문화를 만들고 가꾸어가는 책임은 ‘그들’이 아니라 ‘우리’에게 있다. 별을 받은 곳에만 지나치게 집중하며 편식하지 말고 본인이 발굴한 곳, 새로운 도전이 있는 곳에 지속적인 호기심과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한정된 평가원들보다 늘 함께하는 ‘우리’가 가깝고도 넓은 시야를 가졌으며 더 정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별과 타이틀을 받은 레스토랑과 그렇진 못했지만 오늘도 최선을 다하고 있는 레스토랑 모두에 아낌없는 격려를 보낸다.



박홍인 바앤다이닝 편집장
#박홍인#미식견문록#미쉐린 가이드#바앤다이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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