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13일 수요일 맑음. 킬러의 고백. #270 Phoebe Bridgers ‘Killer’(2017년)
나만 그런 걸까.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는 생각을 몇 번인가 해본 적 있다. 희생자는 다른 누구이거나 바로 나다.
가끔 이런저런 이유로 회사의 데이터베이스에 들어가 옛 기사들을 뒤적여본다. 10년 전 오늘, 우리 신문엔 어떤 기사가 났을까. 20년 전 오늘은?
지금 보면 기사 배치나 사진 같은 게 퍽 촌스러운데 보석도 발견된다. 지금은 꽤나 선임 기자가 된 선배가 나보다도 더 연차가 어렸을 때 쓴 싱싱하고 파릇파릇한 기사를 마주하는 것이다. 그런 발견이 없어도 좋다. ‘아, 이때 이런 일이 있었지!’ 하면서 문득 나도 모르게 담쟁이 덮인 시간의 비밀 통로 앞에 서서 손잡이를 만지며 주저하는 것이다.
얼마 전에 10년 전 신문을 봤다. 음악 영화 ‘원스’가 독립 영화 사상 최초로 20만 관객을 돌파했다는 기사가 있다. ‘원스’ 사운드트랙 음반도 훌륭했지만, 두 주인공 글렌 핸사드와 마르케타 이르글로바가 실제로 결성한 듀오 ‘스웰 시즌’의 앨범은 이렇게 추운 계절이면 반드시 한 번은 재생해야 한다.
한 번 틀면 세 번이고 네 번이고 멍하게 듣고 있게 된다.
올해 그런 음반을 발견했다. 23세의 미국 싱어송라이터 피비 브리저스(사진)의 데뷔앨범 ‘Stranger in the Alps’. 노래 속 주인공은 표지에 그려진 유령처럼 노래와 노래 사이를 부유한다. 비현실적이고 우울한 블랙코미디 같은 스토리를 놀랍도록 담담한 포크 음악 위로 읊으면서….
알 수 없는 ‘당신’은 어딘가 먼 곳, 무인도 같은 데서 연기를 피워 구조신호를 보내지만 ‘나’는 자꾸 그걸 못 본 척하며 죽은 레미나 데이비드 보위를 떠올린다.(‘Smoke Signals’) 친구의 장례식에서 노래를 부르기로 한 ‘나’는 하루 전날, 이상한 악몽에 시달린다.(‘Funeral’) ‘Killer’는 그중 가장 섬뜩하고 슬프다.
‘가끔은 내가 킬러라고 생각해’ ‘너의 집에서 다머(미국의 연쇄살인범 제프리 다머) 얘기를 하다 너도, 말하는 나도 무서워졌지’ ‘근데 난 시체 옆에서 잘 순 없어/죽어서 날 해치지 못한대도’
변심한 연인을 자기 옆에 두는 길은 죽이는 것뿐이라고 주인공은 노래한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일. 주인공의 무기력감은 그래서 극대화된다.
급기야 주인공은 그를 향해 도리어 부탁한다. ‘내가 인공호흡기에 의존해 죽어갈 때 내 부패한 머리에 입 맞춘 뒤 플러그를 뽑아 달라’고. ‘부르다 내가 죽을 이름’이랬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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