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한 인기를 누렸던 젊은 가수가 갑작스럽게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는 당연히 그 젊은이의 죽음을 애도하지만, 그 죽음이 불러올 부정적인 여파도 걱정하게 됩니다. 저도 20여 년 전 저의 친구를 잃으며 그런 일들을 매우 힘겹게 겪었기 때문이죠.
먼저 애도는 하되, 왜 그런 극단적인 결정을 해야 했는지를 섣불리 추측하거나 재단하면 안 됩니다. 유가족 등 주변 사람들을 보호해야 하고, 그 사건이 사회에 미칠 악영향을 최소화해야 하죠. 언론은 보건복지부가 제시한 ‘자살 보도 권고 기준’을 잘 이행해야 합니다.
연구 결과들에 따르면 자살이 신문의 전면 기사로 다루어진 후 2개월 이내에 자살 사건이 다른 때보다 증가한다고 합니다. 특히 유명인이나 스타가 자살했을 때 증가율은 더 높아지는데, 불행하고 절망하던 사람들이 그런 유명인을 자신과 동일시하여 모방 자살을 하기 때문이죠.
과거 유럽에서는 주인공 베르테르가 실연을 당한 후 자살을 하는 내용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큰 인기를 끈 후 이를 모방한 자살이 유행처럼 번졌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모방 자살을 ‘베르테르 효과’라고 부르죠.
복수나 명예 회복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자살의 원인은 절망입니다. 절망의 가장 큰 원인은 애착 관계의 좌절, 그 다음은 사회적 실패, 다시 회복이 불가능하리라는 극단적으로 부정적인 예상입니다. 좋아했던 유명인을 자신과 동일시하고 그 사람의 극단적인 선택을 따르려 할 때, 잠시 멈추고 생각해야 합니다. 신뢰할 수 있는 누군가와 대화를 할 수 있다면 훨씬 더 좋겠지만, 절망은 타인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니까요.
‘내가 그 사람의 죽음의 이유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인가? 나의 절망의 이유와 그의 절망의 이유가 동일한 것인가? 그의 결정과 그가 선택한 방법이 나와 연관되었거나 걸맞은 것인가? 내가 그의 결정을 따름으로써 내가 그와 비슷해지거나 연결될 수 있는 것인가?’ 조금만 객관적일 수만 있다면 답은 모두 “아니다!”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자기애적인 인격이 아니라면,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과 안정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만 있다면 힘들어도 절망하지는 않을 수 있습니다. 자기애적인 인격도 결국 사람과 그 사람의 사랑을 믿을 수 없어서 비롯된 것이죠.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절망의 신호를 보낸다면 거부한다고 해도 달라붙어서 우리의 사랑을 믿을 수 있게 해줘야 합니다. 우리의 노력과 인내가 그를 살릴 수 있는 힘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저처럼 평생을 후회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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