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제국대 출신 문학 엘리트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담았다. ‘문학부를 둘러싼 병 진료 기록’이라는 부제로 시작하는 책은 문학도들의 순수를 가장한 체제 순응과 왜곡된 출세욕을 다각도로 진단했다. 자각 증상, 병력, 병의 원인, 자기 진단, 증상의 예, 전염, 합병증 등의 소제목으로 구성된다.
책은 특히 1940년대 전후의 일본 근대화와 긴밀히 연관된 독일 문학 수용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타 외국 문학과 달리 독일 문학은 교직으로의 진출이 보장되는 학과였다. 도쿄제국대 독문과 출신 다카하시 겐지(高橋健二·1902∼1998)는 평화주의자 헤르만 헤세를 일본에 소개한 인물이다. 그는 1939년 다툼과 박해를 슬퍼하는 심정을 담은 헤세의 시집을 소포로 받은 기쁨을 에세이로 기고하고는, 같은 해 히틀러의 동방 정책을 높이 평가하는 기사를 다른 잡지에 실었다.
문학 엘리트들은 당시 출세 관문이었던 법학부 등에 진학하지 않고 문학을 택했음에도 지식인으로서의 체제 저항이나 전쟁 반대의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오히려 나치즘을 찬양해 일본의 군국주의화를 떠받친다. 그리고 전쟁이 끝나서는 헤세의 소개자 등 순수한 문학도의 탈을 쓰고 아무렇지 않게 복귀했다. 저자는 이들의 행동 기저에 깔린 출세욕, 순응주의, 여성 혐오와 남성 동맹 등을 꼬집는다.
저자는 1958년 태어나 도쿄대 대학원에서 독일 문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고 현재 모모야마학원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스스로도 아카데미에 속한 저자가 내리는 이른바 ‘순수 학문’에 대한 지적은 현재에도 생각할 거리를 준다. 체제를 향한 모호한 태도, 지식인 특유의 그럴싸해 보이는 발언, 속세의 욕망을 내던진 삶을 보여주려는 허영심에 대한 지적이 날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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