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냉담해질 수 있다고 믿지 않았다. 긴장할 수는 있겠지만 냉담해질 수는 없다. 삶의 본질은 온기다.”
-페터 회의 소설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중에서
이 소설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눈(雪)을 읽는 것은 음악을 듣는 것과 같다. 눈에서 읽은 내용을 묘사하는 것은 음악을 글로 설명하려는 것과 같다.” 눈과 음악이 어찌 같을까? 한 송이 한 송이가 음표 하나하나 같다는 얘기일까? 음도 길이도 저마다 다른 음표처럼 눈도 제각기 다르다는 말일까?
주인공 스밀라에겐 그렇다. 이누이트족 어머니와 덴마크인 아버지에게서 태어난 그이다. 결정(結晶) 모양이 6000개가 넘는다는 눈에 대해 스밀라는 천재적인 감각을 갖고 있다.
독특한 제목의 이 이야기는 추리물이다. 추락사한 이웃집 소년이 눈 위에 남긴 발자국을 보고 단순 실족사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었음을 직감한다. 스밀라는 소년의 죽음 이면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많은 추리소설처럼 책장이 휙휙 넘어가길 기대했다간 당황하기 쉽다.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은 끈기를 요구한다. 스밀라가 회고하는 소년과의 추억, 삶과 인간에 대한 성찰이 소설의 주요 흐름이다. 이야기는 범인의 흔적이 조금씩 드러날 때보다도 북국에 걸맞게 차가워 보이는 이 여성의 따뜻한 내면이 드러날 때 묘하게도 짜릿함을 준다. 사람들이 진정으로 냉담해질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는 건 추운 나라의 이야기만이 아니리라. 세상 어느 곳이든 삶의 본질은 ‘온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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