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티앙 디오르, 꿈의 디자이너’ 파리 전시회… 그는 패션-예술을 연결한 융·복합 인재였다
1947년 2월 12일 프랑스 파리 몽테뉴가 30번지. 신예 패션 디자이너 크리스티앙 디오르(1905∼1957·사진)가 자신의 의상실에서 첫 패션쇼를 열었다. 무릎 아래로 풍성한 주름의 플레어스커트, 가슴을 꽃봉오리처럼 강조하고 허리는 잘록하게 만든 ‘바(bar) 재킷’. 패션잡지 ‘하퍼스 바자’의 카멀 스노 편집장은 쇼를 본 직후 말했다. “세상에나, 이건 혁명이에요. 당신의 드레스는 완전히 새로운 룩(뉴 룩·New Look)이에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각진 어깨와 짧은 스커트를 입었던 여성들에게 디오르는 여성의 우아함을 담은 ‘꿈의 옷’을 선사했다. 올해로 브랜드 창립 70주년을 맞은 크리스티앙 디오르. 디오르는 1957년 세상을 떴지만 그의 꿈은 6명의 쟁쟁한 아트 디렉터에 의해 각자의 색으로 계승 발전돼 왔다. 파리장식미술관이 올해 7월 5일부터 내년 1월 7일까지 여는 ‘크리스티앙 디오르, 꿈의 디자이너’ 전시는 프랑스 패션을 대표하는 디오르 역사에 대한 거대한 오마주다. 3000m² 공간에 300여 점의 오트 쿠튀르(최고급 맞춤복)와 향수, 디자인에 영감을 준 예술품과 가구 등을 연대별, 테마별로 전시했다. 디오르야말로 패션과 예술 간의 연결성을 추구한 ‘융·복합 인재’, ‘컬래버레이션의 귀재’였다. 전시를 통해 그의 다양한 면모를 살폈다.
○ 갤러리스트이자 컬렉터
프랑스 노르망디 그랑빌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디오르는 파리정치대학(시앙스포)을 나왔다. 예술학교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부모의 반대에 부딪혀 대신 1928∼1934년 친구들과 아트 갤러리를 운영했다. 그 자신이 컬렉터였던 디오르가 당시 교류한 신진 아티스트들은 미술사에 길이 남을 알베르토 자코메티, 살바도르 달리, 알렉산더 칼더 등이었다.
○ 꽃향기를 사랑한 정원사
그랑빌 집에서 어머니와 정원을 가꾸며 자란 디오르는 장미 백합 등을 드레스 장식에 적용해 여성미를 극대화했다. 1950년 사들인 샤토 드 라 콜 누아르는 지난해 ‘디오르 향수 박물관’으로 거듭났다. 디오르는 ‘뉴 룩’을 선보인 1947년에 ‘미스 디오르’ 향수도 내놓았다.
○ 커뮤니케이션에 능한 사업가
디오르는 미국의 유명 사진가 어빙 펜, 리처드 애버던 등과 함께 작업한 패션사진을 예술의 경지에 올렸다. 디자이너들은 디오르 옷의 여성스러운 실루엣을 각자의 방식으로 해석하듯, 패션사진가들과의 협업도 이어 나간다. 디오르는 미국과 일본 등에서도 사업 수완을 발휘해 큰 성공을 이뤘다. 지금은 루이뷔통모에에네시(LVMH)그룹 소속이다.
○ 위대한 유산
올해 여름 ‘디오르 향수 헌정 전시’를 한 프랑스 남부 그라스 향수박물관을 방문했다. 디오르의 향기들이 향수의 성지에서 퍼졌다. 파리장식미술관의 디오르 전시는 위대한 유산을 소중하게 여기는 삶의 미학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동안 남성들이 이끌던 디오르에서 지난해 최초 여성 아트디렉터가 된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는 패션쇼 티셔츠에 ‘우리는 페미니스트가 돼야 한다’ ‘왜 위대한 여성 예술가는 없는가’란 문구를 넣어 독립적 여성상을 일깨우고 있다. ‘디오르를 사랑해(J‘adore Dior)’를 재해석해 ‘J’ADIOR’를 만들기도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말한다. “사랑해요, 디오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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