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있는 사전들은 매년 올해의 단어를 꼽는다. 2017년의 단어는 젊음(youth)과 지진(earthquake)을 합한 ‘유스퀘이크’(옥스퍼드)와 페미니즘(메리엄웹스터), 가짜 뉴스(콜린스) 등이다. 이 단어들은 경제 불황으로 피어나는 보수주의의 흐름을 막은 청년세대의 정치 참여,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성폭력을 고발한 ‘미투(me too) 캠페인’, 소셜네트워크상의 편향된 정보 섭취 등 올해 사회의 주요 일화들을 압축적으로 담고 있다.
이렇게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렸던 단어를 통해 한국 사회를 이야기한 책이 나왔다. 문화평론가인 저자는 2015년 6월부터 올해 3월까지 유행어를 통해 사회를 분석한 칼럼을 한 일간지에 연재했다. 모두 모아 90개 유행어를 담은 사전이 됐다.
책은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어 너는 말만 해)라는 단어를 설명하면서 ‘불통’을 이야기한다. 답정너는 다른 사람의 의견은 듣지 않고 원하는 답만 기다리는 사람을 놀리는 말이지만, 이런 현상의 기저에는 민주주의 원리에 어긋나는 갈등과 경쟁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 가벼운 말에 대한 사뭇 진지한 분석이지만 일견 ‘답정너’라는 말을 쓸 때 그러한 불만이 새어나왔구나 싶다.
유행어를 가장 많이 만들고 소비하는 청년세대의 단어 ‘썸’(정식으로 사귀기 전 서로를 탐색하는 상황)은 관계에 부담을 느껴야만 하는 현실이 담겨 있다고 한다.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때 유행한 ‘슈퍼 전파자’라는 단어를 설명할 때는 사실 잘못된 정보를 전파한 전문가와 미디어가 ‘2번 슈퍼 전파자’라고 규정하기도 한다. 습관처럼 자주 쓰다 한순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는 유행어를 활자로 만나니 그 무게감이 달리 느껴진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