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나는 어두웠다. 한 인간으로서 혹은 일상을 견디던 나와는 또 다른 나에게, 세상은 무채색이었다. 그 균열은 타인에게 잘 이해되지 않았다. 나에게 텍스트는 스스로를 확인시켜 준 유일한 고유함이었다.
눈 오던 날 들려온 믿기 어려운 소식에 과거의 기억들이 꿈결처럼 밀려왔다. 한동안 접어둔 일기를 펴보니 ‘나에겐 생을 살아가기 위한 분노와 힘이 필요해’라는 구절이 손에 잡혔다. 나는 나약함을 견딜 수 없었고, 무릎 꿇고 싶지 않았다. 공부와 음악은 스스로를 지탱할 이유가 되었다. “우리의 말이 참이라면, 불행히도 결코 끝내 이해되지 못하리라는 것도 참이다”라던 니체처럼, 늘 패배하지만 ‘언어’는 언제나 지속될 것이다. 그렇게 믿고 싶다.
아둔한 제자를 격려해주시는 신범순 조영복 선생님께 깊이 감사드린다. 같이 음악하는 팀원들과 오랜 친구인 성우가 기뻐해주었다. 문학을 공부한답시고 아등바등하는 자식을 걱정하시는 부모님, 특히 어머니께 조금이나마 면피한 느낌이다. 헤매던 글을 붙잡아주신 김영찬 신수정 선생님이 안 계셨다면 여전히 내 글은 머물 곳 없이 떠돌고 있었을 것이다.
끝나지 않던 기나긴 터널에서 조금은 벗어난 느낌이다. 약간 운이 좋았을 뿐이란 마음으로 앞으로도 계속 쓸 것이다. 단지 읽고 또한 쓰며, 오롯이 불행하여 사랑하기에. 나에게는 오직 ‘그것’뿐이니까.
△1979년 대전 출생 △광운대 국어국문학과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석·박사
● 심사평
활달한 문체-비평적 자의식 기억할 만해
전반적인 풍요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새로운 경향의 작품이 등장하고 한국문학의 지형도를 새롭게 그리고자 하는 의욕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판단도 든다. ‘‘희재’가 이룬 것과 ‘김지영’이 묻는 것-‘외딴방’과 ‘82년생 김지영’이 그리고 있는 파국의 지도’와 ‘비규정적 장소 위에서 울리는 언어-배음(倍音)-김행숙, 안태운, 한인준의 경우’가 대표적이었다. 이들은 이전과 구분되는 한국 문학의 새로운 징후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그를 통해 우리 문학이 나아갈 바를 모색하고자 하는 의욕이 돋보였다. 반면 다소 거친 범주화나 이론에 대한 기계적인 적용이 아쉬웠다.
최정화의 소설에 나타나는 ‘주인’과 ‘손님’의 관계를 통해 우리 시대의 신경증을 분석하고 있는 ‘집 없는 시대의 파라노이아, 손님의 건축술’은 독창적이고 미시적인 텍스트 분석력이 눈에 띄었으나 하나의 키워드를 일관되게 밀고나가는 응집된 논리력이 약했다.
결국 당선은 ‘너는 이제 ‘미지’의 즐거움일 것이다’에 돌아갔다. 이 작품이 보여주는 황인찬의 시에 대한 매혹과 활달한 문체, 비평적 자의식은 기억할 만한 것이 아닐 수 없었다. 때로 드러나는 공허한 수사와 감당할 수 없는 과장에 유의한다면 한국 비평계의 큰 자산이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아깝게 고배를 마신 응모자들에게는 아쉬움을, 당선자에게는 축하의 인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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