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만에 재개봉하는 영화 ‘원더풀 라이프’. 죽음이라는 보편적이면서도 무거운 주제를 아름답게 풀어냈다. 안다미로 제공
모든 기억을 잊게 된다고 하자. 그리고 삶에서 딱 한 순간만 기억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를 고르게 될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56)의 영화 ‘원더풀 라이프’가 국내 팬들을 다시 찾아온다. 2001년 국내에 선보였던 이 작품은 최근 리마스터링(화질·음향 개선) 작업을 거쳐 4일 재개봉한다. 고레에다 감독이 처음으로 각본을 쓴 영화로 그의 연출 초창기 모습을 엿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원더풀 라이프’는 죽음에서 시작하는 영화다. 삶의 최후를 맞은 이들은 천국으로 가기 전 중간 역에 해당하는 ‘림보’에 모인다. 그들은 7일 동안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기억 하나를 골라야 한다. 림보의 직원들은 그 추억을 짧은 기록영화로 만든다.
어느 월요일, 림보 역으로 몰려든 남녀노소 망자 22명이 각자의 추억을 되짚어 본다. 어릴 때 짝사랑하던 여자아이를 그리워하는 젊은 남성, 전쟁이란 극한 상황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었던 순간을 떠올리는 노인…. 행복한 추억이 많아 한 순간만 고르길 망설이는 이가 있는가 하면, 무미건조하게 살아와 딱히 남기고픈 추억 하나 없는 이도 있다. 그들의 이야기를 지켜보고 있노라면, 불현듯 잊고 살던 추억 조각이 하나둘씩 밀려온다. 그와 함께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란 깊은 고민거리도. ‘원더풀 라이프’는 언뜻 보면 죽음을 다뤘지만, 실은 본질적으로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다.
‘원더풀 라이프’는 당시 산세바스티안 국제영화제 비평가협회상, 토리노 국제영화제 최우수 각본상 등을 수상하며 평단의 극찬을 받았다. 일본 독립영화로는 이례적으로 미국 200개관에서 개봉해 흥행에도 성공했다. 고레에다 감독은 이 작품 이후 ‘아무도 모른다’(2004년) ‘걸어도 걸어도’(2008년) 등을 연출하며 세계적인 거장 반열에 올랐다. 두 작품 역시 2016년과 지난해 국내에서 재개봉했다.
당시나 지금이나 영화가 주는 울림은 상당하다. 처음 보는 이에겐 난생처음으로 삶의 순간을 곱씹는 기회를 선사한다. 16년 만에 다시 만나는 관객이라면 흘러간 세월만큼 그때와 사뭇 달라진 감상을 마주할지도. 컴퓨터그래픽 등 화려한 기술이 스크린을 채우는 요즘, 다큐멘터리 기법을 활용한 소박한 연출이 더욱 정겹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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