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전당 ‘붓으로 조각하다’전, 김종영의 예술세계 시간여행… 전통과 현대의 일치 과정 보여줘
“전진과 창작을 위해서 기성관념이나 생활 주변의 여러 가지 현실을 부정하는 일이 있더라도 우리들의 의식 속에 깃들어 있는 자국과 그림자는 결코 지울 수 없을 것이다. … 전통이란 말 속에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다는 뜻도 포함돼 있다.”
우성 김종영(又誠 金鍾瑛·1915∼1982)이 1980년 국립현대미술관 도록에 썼던 ‘자서(自書)’의 일부분이다. 이런 글은 다소 의외다. ‘현대 추상조각의 선구자’로 불리는 그가 전통을 중시 여겼다니.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열리는 전시 ‘김종영, 붓으로 조각하다’는 이런 궁금증에 대한 실마리를 낙낙하게 제공하는 자리다.
경남 창원에서 태어난 우성은 ‘영남 사림의 영수’ 김일손(1464∼1498)의 7대손이다. 동요 ‘고향의 봄’에 나오는 “울긋불긋 꽃 대궐”이 그의 생가를 일컫는다고 한다. 명문가답게 여섯 살 때부터 시(詩)·서(書)·화(畵)를 자연스레 접하고 배웠다. 1932년 동아일보 주최 ‘제3회 전조선남녀학생작품전람회’에서 서예작품으로 장원을 차지하기도 했다. 이번 전시를 공동 주최한 김종영미술관의 박춘호 학예실장은 “당시 겨우 17세인 학생이 중국 당나라 서예가 안진경(709∼785)의 서체를 구현하자 심사위원들이 현장에서 다시 써보라고 했을 정도”라고 전했다.
그런 우성인지라 ‘전통과 현대의 일치’는 자연스레 그의 예술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가 됐다. 20세기 초 국내 미술계는 서양 문물에 경도돼 한국과 동양미술을 격하하는 분위기가 컸다. 하지만 양쪽 모두 체득한 우성은 치우치지 않는 균형감을 지닐 수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조각에서도 서구 풍조를 객관적으로 수용하려 했다.
이번 전시는 우성의 예술세계가 글씨에서 그림, 그리고 조각으로 어떻게 이어지는지 엿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우성이 고교 때 수학여행을 갔다는 금강산을 담은 우리의 대표적 전통미술작품으로 겸재 정선(謙齋 鄭敾)의 ‘만폭동도(萬瀑洞圖)’가 있다. 실제로 이에 지대한 영향을 받은 우성의 글씨와 수채화를 먼저 감상하자. 그런 뒤 이를 추상적으로 표현한 드로잉을 거쳐 조각작품 ‘74-5’나 ‘75-4’ 등을 마주하면 한 예술가의 시간여행에 동행한 쾌감이 몰려온다. 특히 추사 김정희(1786∼1856)를 유독 존경했다는 우성의 작품들을 살펴보는 즐거움도 녹록지 않다.
이번 전시에선 우성이 1967년 썼다는 글씨 ‘판천지지미 석만물지리(判天地之美 析萬物之理)’도 만날 수 있다. 장자(莊子)의 ‘천하’편에 나오는 “하늘과 땅의 아름다움을 판단하고, 세상 만물의 이치를 분석한다”는 글귀다. 우성의 예술관을 적확하게 짚어준다. 박 학예실장은 “김종영 선생은 초기엔 작품에 ‘각인(刻人)’ ‘각도인(刻道人)’으로 서명을 남기다가 후기엔 ‘불각도인(不刻道人)’으로 바꿨다”며 “인공적인 아름다움을 배제하고 끝없이 예술의 정수(精髓)를 추구했던 그의 작품세계는 이런 동양적 가치관과 깊은 연을 맺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음 달 4일까지. 02-580-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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