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는 건 무엇일까요? 상대를 믿으면서도 시험하고 싶어지는 것. 상대가 깨끗하고 완벽하게 느껴지는 것. 아무도 이해할 수 없을 희생에 과감해지는 것. 나를 죽일 수도 있는 것…. 이 중 어떤 것은 집착, 착각, 어리석음이겠지요.”(웹툰 ‘이토록 보통의’에서)
아, 입이 간지럽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했던 홍길동의 속내가 이럴까. 최근 은근슬쩍 입소문을 타고 있는 다음 웹툰 ‘이토록 보통의’ 작가 캐롯(필명)을 앞에 두고도 신원을 깔 수 없다니. 9일 서울 강남구 한 카페에서 만난 작가는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굳이 ‘신비주의’ 마케팅을 하고 싶은 건 아닙니다. 하지만 ‘이토록 보통의’는 사랑이란 주제를 보다 신중하게 접근하는 작품이에요. 작가의 신상 때문에 독자의 몰입을 방해하고 싶지 않습니다. 고민 상담 메일도 자주 받는데, 선입견 없이 작품 자체를 봐주길 바랍니다.”
실제로 지난해 2월부터 연재를 시작한 ‘이토록 보통의’는 꽤나 묵직하다. 옴니버스 형식으로 에이즈에 걸린 연인이나 로봇과 사랑에 빠지는 인간 등의 소재로 끊임없이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물론 에이즈나 복제인간 같은 설정이 누구나 겪는 평범한 상황은 아니죠. 하지만 ‘사랑이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의 해답을 찾기 위해 극적인 상황을 설정했다고 보면 좋겠습니다. 예를 들어, 상대방이 완전하기에 사랑하게 된 걸까요. 아니면 사랑하니까 완전해 보이는 걸까요. 만화를 통해 함께 답을 찾아보고 싶습니다.”
그의 작품은 등장인물의 대화가 무척 긴 편이다. 오고 가는 말들은 꼼꼼하게 디테일이 살아있다. 하지만 현실적이라 지루하지 않다. 평소 문학에 관심이 많은 작가는 신춘문예를 목표로 소설도 쓰고 있단다. 그만큼 ‘언어’에 대한 애정이 깊다.
“듣고 싶은 말, 들려주고 싶은 말, 실제로 들었던 말을 만화에 녹이려 노력해요. 웹툰에 나온 내용은 모두 원래 소설로 써뒀던 겁니다. 그림이란 매개체를 통해 글을 쓰고 있는 셈이지요. 그 대신 그림체는 담담하게 갔어요. 자식 잃은 슬픔을 노래했던 정지용 시인의 ‘유리창’처럼, 절제된 표현이 더 처연하잖아요.”
캐롯이 본격적으로 웹툰 작가의 길에 뛰어든 건 2년 전. 원래 광고회사를 다니던 직장인이었다. 당시 야근을 끝내고 녹초가 되어서도 밤을 새워 만화를 그렸다. 그는 “힘들었지만 웹툰 독자의 피드백을 받는 게 큰 위로가 됐다”며 “지금도 사랑이나 삶의 본질을 토로한 독자들의 댓글을 읽을 때가 제일 감사하다”고 말했다.
“전 댓글 ‘덕후’예요. 독자들 닉네임도 웬만큼 다 외웁니다. 어떤 분들은 제가 하고 싶었던 얘기를 훨씬 논리정연하게 하세요. 차마 어디서도 못 하던 속 얘길 꺼내시기도 하고요. 올해 단행본이 나올 텐데, 댓글들도 넣자고 출판사에 건의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작품이란 건 독자들과 함께 만든 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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