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서울 청계천로 한국관광공사 내에 있는 평창 겨울올림픽 홍보체험관에서 만난 임의준 신부(40·천주교 서울대교구 직장사목부)의 말이다.
소치 겨울올림픽을 두 달 정도 앞둔 2013년 12월, 교구장인 염수정 당시 대주교가 가톨릭 신자 선수들을 격려하기 위해 태릉선수촌을 찾았다. 염 대주교가 “뭐든지 돕겠다”고 하자 박 선수는 “올림픽 기간 중 신부님이 따라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염 대주교의 시선이 선수촌의 성 세바스티아노 경당(작은 성당)을 담당하는 임 신부를 향했다. 올림픽이라면 TV에서만 봤던 그에게는 날벼락이었다. 러시아 말 한마디도 못 하는 데다 이미 ID카드도 구할 수 없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떻게 됐나.
“신부들이야 교구장 말씀 떨어지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숙소는 소치 관할 러시아 교구의 도움으로 얻었다. 그런데 대회의 보안 관리가 그 어느 때보다 철저했다. 바깥에서 검문받았는데 ID카드가 없어 결국 14시간이나 경찰서 신세를 져야 했다. 러시아 신부님이 실종 신고하러 경찰서에 왔다 꺼내줬다.(웃음)”
―선수들과는 어떻게 지냈나.
“황당한 ‘신고식’ 빼고는 잘 풀렸다. 미사를 집전하고 고해성사와 병자성사도 진행했다. 성적 부담이 있어 선수들이 신부와 나누는 대화를 편하게 여긴 것 같다. 가끔 선수들이 주는 ‘미션’도 있었다.”
―미션?
“외부 출입이 안 되는 선수들과 달리 신부는 출입이 자유롭지 않나. 집에 두고 온 인형을 대신할 무언가나 초콜릿 같은 기호 식품을 사다 주기도 했다. 이거 나가도 괜찮은지….”
한국 신부가 와 있다는 소문이 나서 이탈리아 선수단 요청으로 미사도 진행했다. 이후 그는 스페인 그라나다 겨울 유니버시아드, 인천 아시아경기대회,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 이어 지난해 삿포로 겨울 아시아경기대회까지 단골 멤버가 됐다. 이번 평창 올림픽에서도 가톨릭 담당으로 활동한다. ―잘 풀린 것 아닌가.
“그런 것 같다. 박승희 선수는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종목을 바꿔 출전하는데 이번에도 인연을 이어가게 됐다. 교구에서 한국체대 대학원 진학을 허락해 스포츠심리도 배워볼 생각이다.”
―그림 그리는 신부로 알려져 있었는데 ‘스포츠 신부’가 됐다.
“2014년 출간된 ‘뒷담화만 하지 않아도 성인이 됩니다’라는 책에 삽화를 그렸다. 2015년 ‘그대를 나는 이해합니다’, 지난해 ‘아직도 뒷담화 하시나요?’로 교황님 말씀을 담은 이 시리즈는 완결됐다. 자존감이 부족한 것 같아 치료 차원에서 그림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먼지처럼 조용하게 살자는 게 삶의 모토인데 일이 점점 커진다.”
―교구의 직장사목부는 어떤 역할을 하나.
“신자들이 직장에서도 신앙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이다. 본당은 신자들을 기다리지만 우리는 찾아가서 ‘야쿠르트 아저씨’로도 불린다(웃음). 청와대와 국회, 헌법재판소, 한국은행 등 70여 곳에서 평일 점심 미사를 드린다.”
―청와대 미사는 어떤가.
“이명박 정부 말기부터 담당했는데 크게 다를 것은 없다. 이전 정권들에서는 일사불란했다면 요즘에는 질문하는 분도 많아지고 공기가 좀 자유로워졌다.” ―이번 대회에 북한 선수단도 참여하게 됐다.
“무엇보다 화합의 축제가 되기를 바란다. 또 메달 색이 아니라 최선을 다한 선수들의 땀과 노력을 향해 박수를 보내면 좋겠다. 작은 힘이지만 옆에서 선수들을 돕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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