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악(巨惡)의 비리를 척결하는 정의의 사도, 탐욕스러운 권력욕에 사로잡힌 엘리트. 한국 대중문화에서는 검사를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나 영화가 수두룩하다. 하지만 이 책은 현실과 대중문화 사이엔 ‘항공모함 서너 개는 교행할 수 있을’ 만한 간격이 있다며 실제 검사들의 삶을 조명한다.
“세상을 속이는 권모술수로 승자처럼 권세를 부리거나 각광을 훔치는 사람들만 있는 것 같지만, 하루하루 촌로처럼 혹은 청소부처럼 생활로서 일을 하는 검사들도 있다.”
저자는 인천지검 공안부장으로 근무 중인 18년차 검사다. 특수부나 금융조세조사부처럼 화려한 수사 결과를 낼 수 있는 부서가 아닌 일선 지방검찰청의 형사부에서 대부분의 경력을 보냈다. 그가 접한 각종 사건을 통해 우리나라의 사법 현실, 검찰 조직 문화를 깊이 있게 분석했다.
지금은 법전에서 사라졌지만 검찰 문화의 핵심은 ‘검사동일체’(검사는 조직체의 일원으로 상명하복 관계에서 직무를 수행한다는 뜻)다. 저자는 평검사 시절 차장 검사의 술자리 호출에 응하지 않으며 오히려 “제가 술 마시다 차장님을 부르면 나와 주나요”라고 반박했다는 일화를 소개한다. 읽는 이가 더 걱정이 될 정도지만 저자는 “선입견과 달리 당시 검찰의 문화가 유연했다. 평검사의 의견을 함부로 배제하지 않고 자신의 명예와 기개를 위해 직을 걸곤 했다”고 밝혔다.
지나치게 많은 형사처벌 조항을 만들어 검찰과 수사기관이 모든 분야에 개입할 수 있도록 한 한국 사회의 왜곡된 사법 현실에 대한 예리한 통찰도 담았다. 묵묵히 일하는 현직 검사의 솔직한 고백이 신선한 울림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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