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계는 철저한 사회개혁을 주장하면서도 역설적으로 유교의 전통을 지켜야 한다는 상고주의자였죠. ‘그리스와 로마로 돌아가자’는 서양 르네상스의 정신과 맥이 닿아 있는 조선판 르네상스를 부르짖었던 인물이었습니다.”
9일 서울 종로구의 한 오피스텔에 위치한 ‘익선재(益善齋)’. 창덕궁이 훤히 내다보이는 이곳은 임형택 성균관대 명예교수(75·사진)가 마련한 연구공간으로 한문고전을 읽고 토론하는 연구자들이 함께 한다. 임 명예교수는 최근 반계 유형원(1622∼1673)의 시와 산문 등 문집을 엮은 책 ‘반계유고’를 익선재 학자들과 함께 출간했다.
반계는 조선 실학의 시초라 여겨질 만큼 조선 후기 지식인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성호 이익(1681∼1763)은 반계의 대표 저서인 ‘반계수록’을 신묘한 약초에 비유하며 “병자가 여기서 죽어가고, 약초는 저기서 썩어가 마침내 이도 저도 다 못 쓰게 됐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반계는 다산 정약용(1762∼1836) 등 후대 실학자에 비해 유명하진 않다. 임 명예교수는 “새가 좌우 날개로 날듯이 그 사람의 진면목을 보려면 학문적인 저서뿐 아니라 문집을 함께 봐야 한다”며 “유형원이 덜 조명된 데에는 6권으로 알려진 문집 ‘반계선생유집서(磻溪先生遺集序)’가 소실돼 그의 사상이 오롯이 전달되지 못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임 명예교수는 3년이 넘는 시간을 투입해 반계의 시와 산문을 수집하고 번역했다. 이 책에는 반계의 시 182편이 수록됐고, 역사·지리·철학 등 여러 방면에 대해 쓴 산문도 실렸다. 또 정조대왕과 반계의 동료 및 후학이 그를 기억하고 그리며 쓴 각종 기록 역시 담겼다. 반계가 쓴 시 ‘두 벗을 생각하며’에선 “발분하여 고인을 좇고 근본을 두텁게 해 부화를 털어내기에 힘쓰네”처럼 실천적 학자의 면모를 만날 수 있다.
2018년 반계를 다시 되짚어야 하는 이유는 뭘까. 임 명예교수는 “반계는 명·청 교체라는 혼란기를 겪으며 적극적인 통화정책, 토지개혁 등 근본적인 변화를 주장한 인물”이라며 “여러 안보 이슈와 적폐청산 등 격변기에 놓여 있는 현재의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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