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3월의 눈’에서 부부로 첫 호흡을 맞추는 오현경(오른쪽), 손숙 배우. 각각 연세대, 고려대 극회 출신으로 데뷔한 지 50년을 훌쩍 넘긴 이들은 “어떤 장르보다 연극 무대에 섰을때 가장 행복하다”고 입을 모았다. 원대연기자 yeon72@donga.com
원로 배우 오현경 씨(82)와 손숙 씨(74)가 연극 인생 처음으로 한 무대에 선다. 국립극단의 봄 레퍼토리 연극인 ‘3월의 눈’에서 노부부로 호흡을 맞추게 됐다.
3월의 눈은 국립극단 원로 배우 고 장민호 씨(1924~2012)와 백성희 씨(1925~2016)를 위해 2011년 쓰인 헌정 연극. 오래 묵은 한옥을 배경으로 아내를 하늘로 보낸 남편 장오, 죽은 뒤에도 남편 곁을 떠나지 못하는 아내 이순의 하루를 그렸다. 배우들의 감정과 움직임은 과하지 않고 담담하다. 그 기름기 없는 연기가 오히려 관객에게 처연함과 뭉클함을 전해 관객들의 눈물을 쏙 빼놓기로 유명한 작품이다.
다음달 개막을 앞두고 한창 연습에 매진 중인 오 씨와 손 씨를 17일 서울 용산구 청파로 국립극단에서 만났다. 두 배우는 “둘 다 50년 넘게 무대에 섰는데 함께 출연하는 건 이번 이 처음”이라며 “연기패턴도 비슷하고 사석에서도 워낙 친한 사이라 첫 호흡 같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사실 두 사람의 연결고리는 아스라한 아픔이 묻어난다. 지난해 패혈증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난 배우 고 윤소정 씨가 오 씨의 부인이자 손 씨의 절친한 벗이었다.
“아내의 친구였던 손숙은 내겐 가족과 다름없는 사이요. 1970년대 서울 마포구 연세맨션 앞 뒤 동에 나란히 살며 거의 매일 드나들었지.”(오현경)
두 배우가 살았던 연세맨션은 당시엔 ‘배우 아파트’로 통했다. 고 백성희·이낙훈, 손숙, 오현경, 최불암 등 수많은 배우들이 거주했다. 손 씨는 “특히 오현경 선생님 댁이 배우들 사랑방이자 합숙소였다”며 “착한 소정이가 찾아오는 배우들 밥도 다 해주고 극진히 챙겼다”고 말했다.
게다가 손 씨에게 ‘3월의 눈’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고 백성희 배우가 손 씨의 국립극단 직속 선배이기 때문이다.
“2011년 ‘3월의 눈’ 초연을 관람한 뒤 손진책 전 국립극단 예술감독에게 먼저 얘기했죠. 백 선생님이 더 이상 이순 역을 맡지 못하시게 되면 내가 하고 싶다고. 배우라면 누구나 공감할 거예요. ‘3월의 눈’은 마지막 눈 감을 때까지 연기하고 싶은 작품인 걸.”
감회가 뭉클하긴 오 씨 역시 마찬가지다. 작품 속 대사 하나하나마다 세상을 떠난 아내가 떠올랐다. 손 씨는 “솔직히 문득 뭉클하게 생각날 때가 왜 없겠느냐”며 “하지만 배우는 작품에 몰입해야 하니 그렇게 연결되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이 작품이 마냥 편한 건 아니다. 무대에선 ‘입신(入神)’의 경지에 든 오 씨와 손 씨지만 만만치 않은 주문을 받았다. 오 씨는 “평생을 연기해온 내게 손 감독은 ‘연기하지 않는 연기’를 하라고 계속 지적한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손 씨 역시 “과거 이해랑 선생님이 ‘부단히 연습하다보면 어느새 캐릭터가 배우의 손을 잡아주고 있다’는 말씀을 곧잘 하셨는데, 손 감독이 바라는 게 이런 게 아닐까 싶다”고 덧붙였다.
두 배우는 벌써부터 관객들의 반응이 기다려진다.
“지난 시즌 공연 때 보니까 관객의 반 이상은 극 중반부쯤 가서야 이순이 죽은 할머니인 걸 알더군요. 어떤 이들은 끝까지 모르는 경우도 있고. 그런 걸 보고 있으면 무지 재밌어요. 실제로도 이순은 이승과 저승의 애매한 경계에 존재하는 거니까. 그래서 ‘3월의 눈’은 연기하는 배우도 무대를 지켜보는 관객에게도 더욱 매력적인 작품이 아닐까 싶어요.” (손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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