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치원과 여귀신의 인연 담은 소설… 9세기 작품 중 가장 우수한 평가
김건곤 교수 “3부만 후대에 추가”
‘신라판 천녀유혼.’
통일신라의 천재 문인 최치원(857∼?)의 작품으로 알려진 ‘쌍녀분기’는 여귀신과 최치원의 기이한 인연을 다룬 소설이다. 원래 제목은 쌍녀분기였으나 조선시대 성임(1421∼1484)이 우리나라와 중국의 이야기를 정리해 출간한 ‘태평통재’에서 저자의 이름을 따 ‘최치원’으로 제목을 바꾸고, ‘신라수이전’에 수록된 것이라 정리했다. 9세기 당시 설화에서 소설로 이행하는 단계에서 나온 가장 빼어난 작품으로 한반도 문학사에서 의의가 크다.
하지만 실제 저자에 대한 논란은 최근까지 끊임없이 이어졌다. 이 작품은 최치원의 일생을 소개한 1부와 소설의 핵심 내용인 2부, 최치원의 말년 생애를 다룬 3부로 구성돼 있다. 특히 3부에 최치원의 죽음까지 언급돼 있어 후대에 작품이 기술됐다는 의심도 제기돼 왔다.
하지만 최근 쌍녀분기의 저자를 구체적으로 밝힌 연구가 나왔다. 김건곤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대동한문학회에 게재한 논문 ‘신라수이전 최치원 저작설에 대한 보론’을 통해 쌍녀분기의 실제 저자는 최치원이 틀림없다고 봤다.
논문에 따르면 논란이 컸던 3부는 최치원의 서술이라고 보기 힘든 구석이 많다. 1부에서 자신의 이력을 소개하며 과거에 한 번에 합격했다(一擧登魁科)는 내용을 소개했는데, 3부에서도 똑같은 내용이 등장한다. 게다가 앞선 최치원과 두 여인의 대화는 화려한 문체가 돋보이나, 3부는 긴장감 없이 이력만 서술한다. 김 교수는 “3부는 ‘격황소문’으로 적장을 침상에서 떨어뜨릴 정도로 명문장가였던 최치원의 글과는 확연히 다른 문체”라며 “3부의 최치원 개인 이야기는 후대에 추가로 서술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국 고문헌도 이 같은 사실을 뒷받침한다. 송나라 문인 장돈이가 편찬한 ‘육조사적편류’는 쌍녀분기를 옮기며 최치원의 생애는 다루지 않고 있다. 쌍녀분기의 2부 내용과 같은 것이다.
논란의 불씨는 성임이 태평통재를 편찬하면서 쌍녀분기를 각색한 것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있다. 성임은 15세기 이전까지의 중국과 우리나라의 일화나 시화를 광범위하게 수록했다. 특히 작품의 제목을 저자의 이름으로 바꾸고, 추가로 자료를 덧붙이는 경우가 많았다. 김 교수는 “성임이 최치원 사후 작성된 ‘최치원 열전’의 일부 내용을 쌍녀분기에 합쳐 쓰면서 후대에 오해를 일으키게 됐다”며 “성임이 정리한 소설 ‘최치원’과 최치원의 ‘쌍녀분기’는 내용이 다르므로 학계의 후속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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