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해씨, 인촌기념회 1000만원 기부
부친이 관리하던 인촌자택서 출생
“몸 불편한 선생 위해 책 심부름… 소설 ‘25시’ 읽어드리니 눈물 흘려”
오병해 씨는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70년 전 상황을 또렷하게 기억했다. 인촌 김성수 선생에 대한 부분은 그림을 보듯 생생하게 풍경과 상황을 묘사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인촌 선생은 한번도 언성을 높이신 적이 없었어요. 저처럼 어린 사람의 말도 늘 경청한 다음 나긋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조목조목 말씀을 하셨지요. 그래서 요지가 분명했고 남다른 설득력도 있었다고 기억합니다.”
22일 서울 종로구 인촌기념회를 찾은 오병해 씨(81)는 평생 간직해 온 인촌 김성수 선생과의 각별한 인연을 털어놓았다. 오 씨의 조부는 전라도 고부군 신림면 출신으로 인근의 부안면 인촌리(현 전북 고창군 부안면 봉암리 인촌마을) 출신인 인촌의 부친과 가깝게 지냈다. 그 인연으로 오 씨의 아버지는 인촌의 서울 종로구 자택에서 살며 집을 돌보면서 서기 일도 맡았다. 오 씨는 “인촌의 자택에서 태어나 3년간 함께 살았다”고 말했다.
6·25전쟁 때 부산 피란을 거쳐 대구로 거처를 옮긴 인촌을 따라 오 씨도 대구에서 중학교를 다녔다. 오 씨는 “전쟁 중에 인촌이 부통령에 선출돼 초당적으로 나라를 지키려 힘쓰는 모습을 곁에서 많이 봤다”며 “인촌의 집에는 야당 인사들뿐만 아니라 여당 인사까지 인촌을 보기 위해 드나들었다. 인촌의 인품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고 회고했다.
오 씨는 인촌의 집을 자주 오간 사람 중 한 명이다. 바로 책 심부름 때문이다. 오 씨는 몸이 불편했던 인촌을 대신해 인촌이 읽고 싶은 책을 구해다 옆에 앉아 자주 책을 읽어줬다. 오 씨는 “루마니아 작가 게오르규의 ‘25시’라는 소설을 읽어드릴 때 인촌이 갑자기 눈물을 흘렸던 것이 기억난다. 약소국가 국민인 주인공의 기구한 운명이, 인촌에게는 이 나라 백성의 형편과 겹쳐져 보였으리라 짐작한다”고 밝혔다.
서울로 돌아온 뒤에도 오 씨는 고려대 인근에서 살면서 인촌과 인연을 계속 이어왔다. 오 씨는 “내가 책을 보고 있으면 ‘병해야, 무슨 책이냐’ 하면서 살펴보곤 했다”며 “성적표가 잘 나오면 꼭 인촌에게 보여줬다. 칭찬을 받으면 너무 기분이 좋았다. 나는 인촌 할아버지의 심부름 잘하는 손자였던 셈”이라고 회상했다.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회사원으로 근무했던 오 씨는 이날 틈틈이 모아온 1000만 원을 인촌기념회에 기탁했다. 일반인으로서는 적지 않은 금액이다.
오 씨는 “인촌은 참애국자이자 큰어른이었다”며 “여유가 되면 1억 원이라도 내놓고 싶었다. 어린 시절 내가 입은 은혜에 늘 감사했는데 늦게나마 보답을 하게 되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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