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고… 있고… 있고… 그 사이에 詩가 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25일 03시 00분


김언의 다섯 번째 시집 ‘한 문장’… 의미 포착 위한 시적 실험 가득

시의 경계 밖으로 향하는 실험적인 시작(詩作) 활동을 꾸준히 해 온 김언 시인(45·사진)이 다섯 번째 시집 ‘한 문장’(문학과지성사)을 펴냈다. 기존의 관념과 문법으로는 놓칠 수밖에 없는 시간의 흐름과 그 사이를 표류하는 의미를 포착하기 위해 쉴 틈 없는 실험과 탐색을 지속한 시들을 수록했다.

“나는 슬퍼하고 있고 슬퍼지고 있고 슬프고 있고 그래서 슬프다. 사이사이 다른 감정이 끼어든다…그것은 불안인가? 불안하려고 있다. 불안하고자 있다. 비참하고자 있고 참담하고자 있고 담담하고자 있었다.”(‘있다’ 중)

슬프고 불안한 상태를 표현하는 문장은 사실 불완전하다. 어떤 감정 속에는 말이 붙들지 못하는 수많은 다른 감정과 시간의 흐름이 끼여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그 지점을 향해서 부지런히 달려간다. 24일 본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시인은 “‘있다’라는 동사를 붙여 쓸 수 없는 ‘예쁘다’ ‘슬프다’ 같은 형용사에 ‘있다’를 붙여서 순간순간을 포착하려는 문장 실험을 시도해 봤다”고 말했다.

생각해 보면 언어만 그런 것이 아니다. 존재도, 관계도 항상 설명하기 어려운 지점을 서성인다. “그날 아침에는 집과 사무실 사이에 있었다…오늘과 내일 사이에도 있었다. 11시와/1시 사이에도 있었다”(‘사이’)처럼 무엇과 무엇의 사이, 그 어느 묘연한 지점에 우리가 있다. 관계 역시 “둘 다 알 수 없는 만남을 헤어지고 있고 헤어지고 있는 상태를 만나고 있고 만날 수 없는 상태를 유예하고 있고…”(‘만남’)에서처럼 난해한 것.

남승원 문학평론가는 해설에서 “어떤 시인도 자신만의 의미를 붙들기 위한 싸움을 마다하지 않겠지만 김언의 경우 그 승패 여부에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대결의 무효를 주장하고 나선다”고 말한다. “승부가 끝나지도 않은 상황에서의 일방적인 종료 선언”인 셈이란 것.

“내가 없다면 누가 있겠는가. 이렇게 말하는 내가 없다면 이렇게 묻는 누가 있겠는가…단 한 사람의 손이자 모든 사람의 기록으로 비가 온다. 눈이 내린다. 내가 없다. 그럼 누가 있겠는가.”(‘내가 없다면’ 중)

그 표현대로 시의 문장들은 물 흐르듯 유려한 호흡으로 인과의 연쇄를 이루지만 의미는 형성되려다 멈춰버리고 이어지려다 이내 뚝뚝 끊어진다. 그렇게 이질적으로 빚어지는 충돌과 긴장감이 이 시집의 매력이다. 시인은 “일단 시의 호흡에 독자들의 호흡이 얹어지기만 하면 금방 읽을 수 있을 테니 몇 편만 인내심을 가지고 읽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김언#한 문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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