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 플래빈(1933~1996)이란 예술가가 낯설다면, 26일 문을 연 서울 송파구 롯데뮤지엄의 ‘댄 플래빈, 위대한 빛’은 당혹스런 기분이 들 전시다. 특히 전시관에서 처음 마주하는 작품 ‘1963년 5월 25일의 사선’은 달랑 45도쯤 기울어진 형광등 하나가 전부다. 털어놓자면 미리 공부를 하고 가도 좀 ‘거시기’하다.
하지만 우리는 눈치껏 안다. 참아야 한다. 앤디 워홀(1928~1987)과 비견되는 작가라는데. 솔직히 워홀 작품도 옛날엔 동네 호프집에 내걸린 그림판으로 더 친숙했지 않은가. 모르니까 평가도 맘대로 인거다. 대신 하나씩 배우다보면 그게 또 나름 즐거우리니.
실제로 ‘형광등의 작가’ 플래빈은 워홀과 공통점이 꽤 많다. 다섯 살 터울 미국 작가로 첫 전시도 1960년 전후쯤. 당시 현지 미술계 대세였던 추상회화에 대한 반작용으로 ‘팝아트’(워홀)와 ‘미니멀리즘’(플래빈)을 추구했다. 산업재료를 미술로 끌어들였고, 시리즈 연작을 즐겼다. 선구자들이 그렇듯 둘 다 초기엔 욕 많이 먹었다.
이번에 들어온 14점은 플래빈의 ‘욕 받이’ 시절이라 할 초기작들(1963~74년). ‘1963년…’은 바로 그가 처음으로 형광등을 이용한 작품이다. ‘콩스탕탱 브랑쿠시에게’란 부제가 달렸는데, 현대추상조각의 선구자로 불리는 루마니아 조각가 브랑쿠시의 ‘끝없는 기둥(Endless Column)’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한다. 형광등도 어지러운데 시골벌판에 배배 꼬여 30m 넘게 올라간 기둥라니…. .
하지만 의외로 플래빈 작품은 미주알고주알 따지지 않아도 딱히 불편하지 않다. 설렁설렁 따라 걸으며 각자 ‘필’대로 맛보면 된다. 원래 ‘빛’이라는 게 그렇지 않나. 공원에서 햇볕을 쬐려고 광합성과 비타민D까지 연구해야 하는 건 아니니까. 눈 부라리며 집중할 필요도 없다. 안구만 뻑뻑해질 뿐. 그저 작품에서 뻗어 나오는 빛을 즐기면 된다.
그런 뜻에서 이번 전시의 ‘앙꼬’로 꼽히는 ‘무제(Untitled)’는 무척 인상적이다. 제목도 없는데 주로 ‘장벽(Barrier)’이라 불리는 이 작품은, 길이가 40m를 넘어 기억에 안 남을 수가 없다. 1.2m짜리 형광등이 60㎝ 간격으로 뻗어있는데 울타리인지 책장인지 그물인지 묘하다. 작품을 소장한 미국 디아아트(Dia Art)파운데이션 관계자는 “현지 전시장에선 매우 남성적이고 거친 느낌을 주는 작품이었는데, 여기선 예쁘고 몽환적인 느낌을 주는 게 이채롭다”는 감상을 내놓았단다. 역시 빛이란 시공간을 타고 넘는 존재인가보다.
아쉬운 건 전시장소다. 찾아가기 너무 힘들다. 롯데월드타워 7층에 있는데 길이 복잡하기 이를 데 없다. 물론 잘만 당도하면 공간은 상당히 매력적이지만. 권윤경 롯데뮤지엄 아트디렉터는 “첫 시작이니만큼 플래빈에 이어 ‘사실주의 초상화의 선구자’ 알렉스 카츠의 전시를 준비하는 등 대형기획을 선보일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4월 8일까지.
※콘스탄틴 블랑쿠시=Constantin Brancusi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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