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첫 만남서 반한 사람… 첫 연주에 담긴 설렘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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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30일 화요일 눈. 노래의 방.
#276 Roberta Flack ‘The First Time Ever I Saw Your Face’(1969년)

노래 속에 그려진 정경은 늘 낭만적이다.

화성과 멜로디의 행간에 눈이 오고 비가 내리며 때로 번개가 친다. 젖은 플랫폼 위에 선 두 사람 사이로 주황색 가로등이 놓이고 스산한 바람 한 줄기가 불어오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곳은 듣는 이의 상상에만 존재한다. 실제로는 있지도 않은 3분 30초 넓이의 세트장일 뿐이다. 노래가 녹음된 곳은 대체로 이런 그림과 조금도 안 닮았다. 녹음실이라고도 부르는, 스튜디오의 풍경은 차라리 공과대학 실험실을 닮았다. 마이크와 악기, 앰프, 그리고 악기와 녹음장비를 잇는 케이블이 어지럽게 널려 있는 삭막한 공간이다.

미국 가수 로버타 플랙의 데뷔앨범 ‘First Take’의 표지(사진)를 보면서 든 생각이다. 표지 속에서 플랙은 전경에 있다. 건반 위에 두 손을 올리고 피아노를 향해 고개를 떨어뜨렸다. 연주에 몰두한 건지, 잠시 상념에 젖은 것인지는 이 정지화면만 봐서는 알 수 없다.

가수나 연주자는 갑갑한 스튜디오에 틀어박혀 똑같은 노래를 수십 번이고 수백 번이고 연주한다. 그 가운데 가장 좋은 연주와 노래를 선택해 음반에 담는다. 한 곡을 녹음하는 데 몇 시간에서부터 몇 날 며칠까지 걸리는 것은 그 때문이다.

플랙의 앨범 제목인 ‘First Take’는 첫 녹음 분을 뜻한다. 스튜디오에 도착한 음악가가 연습과 몸 풀기를 끝낸 뒤 ‘자, 이제 녹음 들어갑시다!’ 하고 처음 연주한 그 노래, 그 소리.

음반 ‘First Take’의 하이라이트는 ‘The First Time Ever I Saw Your Face’다. ‘제일 처음 당신의 얼굴을 봤을 때/당신 눈에서 태양이 떠오른다고 느꼈지/달과 별들은 당신의 선물/어둠과 끝없는 하늘에게 선사해준….’

노래 속 주인공은 첫눈에 반한 사람과 연인이 된다. ‘처음 당신의 입에 키스했을 때/내 손 안에서 지구가 움직인다고 느꼈지….’ 그리고 둘은 마침내 하나가 된다. ‘우리의 기쁨이 지구를 메우고/영원까지 지속되리라 믿었어.’
 
그 순간을 기억하고 있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플랙#roberta flack#the first time ever i saw your f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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