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거사 크리스티(1890∼1976·사진)는 대영제국의 전성기, 영국 남부 해안도시 토키에서 늦둥이 막내딸로 태어났다. 매년 여름 프랑스로 가족 여행을 다닐 정도로 부유한 가정이었다. 하지만 부모는 딸에게 글을 가르치지 않았고 학교도 보내지 않았다. 빅토리아 시대 여성은 ‘가정의 천사’로 살아야 했고, ‘직업은 천한 여성들이나 갖는 것’이라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애거사는 성경과 신문을 읽으며 혼자 글을 깨쳤다.
열 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어머니는 어린 딸과 이집트로 떠나 피라미드를 보며 슬픔을 달랬다. 프랑스 기숙학교에서 신부 수업을 받은 애거사는 토키의 무도회장에서 만난 아치 크리스티 공군 중령에게 푹 빠져 급하게 결혼식을 올린다. 1차 세계대전 중 애거사는 병원에서 약제사로 일하며 전쟁터로 떠난 남편을 기다린다. ‘독살의 여왕’으로 불릴 정도로 그의 추리소설에 독약이 많이 쓰이게 된 배경이다. 전쟁이 끝나고 남편이 귀환하자 그는 전업주부 모드로 전환한다. 비행장, 골프장 등 남편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 따라갔다. ‘구름 속의 죽음’ ‘골프장 살인사건’은 당시 경험을 반영한 작품이다.
어린 딸을 친정에 맡기고 남편과 떠난 유람선 여행은 환상적이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호주-뉴질랜드-하와이-캐나다의 관광지를 구경하고 서핑을 즐겼다. 남편만 따라다니면 되었기에 지도를 볼 필요는 없었다.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이 인기를 끌며 짭짤한 수입이 생겼지만 런던의 금융인으로 잘나가는 남편과 예쁜 딸을 키우며 살림하는 재미에 푹 빠져 있던 그에게 글쓰기는 부업일 뿐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이 다른 여자가 생겼다며 이혼을 요구하자 그는 큰 충격을 받고 가출한다. ‘미모의 여성 추리소설 작가의 실종’이라는 흥미로운 사건을 영국 신문들이 경쟁적으로 보도하면서 그는 일약 유명인사가 된다. 열흘 후 호텔에서 발견됐지만 기억상실증 환자처럼 멍한 상태였다. 어머니의 죽음에 이은 남편의 배신, 사람들의 수군거림으로 그는 악몽과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이혼 후 어린 딸을 키우게 된 그는 먹고살기 위해 소설을 써야 했다. 상처를 잊고 홀로 서기 위해 그는 세계 지도를 펼쳤다. 처음에는 익숙한 서인도 제도의 휴양지에서 쉬다 오려 했지만 막판에 이라크의 우르로 바꾸었다. 성경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고향 ‘갈대아 우르’에서 바벨탑 같은 거대한 신전, ‘지구라트’를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무작정 오리엔트 특급 열차에 올랐다. 준비 없이 떠난 여행은 고생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그는 낯선 곳으로 홀로 떠나며 단단해졌다. 소설의 소재와 배경도 확장됐다. 특히 이라크 사막에서 본 일출과 아침 식사는 황홀한 추억으로 남았다.
이후 그는 중동의 유적지에서 안내를 해주던 14세 연하의 옥스퍼드대 출신 고고학자 맥스 말로윈과 사랑에 빠진다. 결혼한 두 사람은 매년 오리엔트 특급 열차를 타고 프랑스 칼레, 파리∼스위스 로잔∼이탈리아 밀라노, 베네치아, 트리에스테∼크로아티아 자그레브∼세르비아 베오그라드∼불가리아 소피아∼터키 이스탄불을 거쳐 시리아, 이집트, 이라크 등 사막의 유적지를 답사했다.
남편의 발굴 작업을 도우며 지리적 상상력을 기른 그는 추리소설 작가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린다. ‘오리엔트 특급 살인’ ‘메소포타미아의 살인’ ‘나일강의 죽음’ ‘그들은 바그다드로 갔다’는 행복한 중동 탐사 여행의 부산물인 셈이다. 특히 티그리스강이 내려다보이는 이라크 별장과 ‘님루드 신전’ 등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그들의 사랑이 꽃핀 장소였다. 그는 40년 가까이 지속된 만족스러운 결혼 생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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