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세상을 떠난 정강자 화백(1942∼2017) 이름 앞엔 이런 수식어가 자주 붙는다. 그도 그럴 것이 1968년 ‘세시봉’에서 고인이 선보인 퍼포먼스 ‘투명풍선과 누드’는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여성을 억압하는 사회를 고발한다는 함의보단 국내 최초의 누드 행위예술이란 잔상이 지금도 크게 각인돼 있다.
하지만 정 화백이 타계한 뒤 열리는 첫 회고전 ‘정강자: 마지막 여행은 달에 가고 싶다’는 어쩌면 그의 진짜 속살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될지도 모르겠다. 속세의 피상적 평가에 가려졌던, 고인의 내면을 비추는 회화 및 조각작품 약 75점이 서울과 천안에서 관객을 기다리기 때문이다.
고인의 작품은 일단 ‘강렬하다’는 표현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환생’(1985년)이나 ‘사하라’(1989년) 같은 작품은 날것 그대로의 파닥거림이 넘실댄다. 정 화백은 1970년 첫 개인전 ‘무체전’을 이틀 만에 강제 철거당했다고 한다. 선입견에 사로잡힌 정부 권력의 남용이었다. 전지영 전시담당은 “상심한 고인은 1977년 싱가포르로 이주했다가 1980년대엔 아프리카와 중남미를 오랫동안 여행했다”고 설명했다. 1970년대 후반부터 전념했다는 회화에는 이때 깊숙이 팬 상처를 안고 마주했던 오지의 에너지가 오롯하다.
더 흥미로운 건 1990년대부터 몰두했다는 추상작품들. ‘한복의 모뉴먼트’(1998년)처럼 전통문화에 대한 회귀가 엿보이기 때문이다. 세상의 격식을 깨려 했던 여성 전사의 변절일까. 아니다. 고인은 생전에 한복 치마를 “수천 년 남성우월주의 지배에서 억압받고 유린당한 우리네 여성의 깃발”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작품에서 치마끈은 훨훨 풀려난 채 자유롭게 날갯짓한다.
말년에 완성했다는 ‘마지막 여행은 달에 가고 싶다’(2015년)와 ‘인생Ⅱ’(2016년)도 매혹적이다. 사막은 피안을 닮았고 바다는 산맥을 품었다. 평생을 경계에 서 있던 작가는 마침내 그 정점을 찾아낸 것처럼 보인다. 다만 그림은 아무 말이 없다.
서울 갤러리에 전시된 대형 솜뭉치도 예사롭지 않다. 정 화백이 대형 목화솜을 굵직한 쇠파이프로 눌러놓았던 1968년 설치작품 ‘억누르다(To Repress)’를 재연했다고 한다. 누가 봐도 ‘성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의식이 묵직하다. 고인은 이제 짐을 내려놓고 훠이훠이 가벼이 갔을까, 아니면 거기도 비가 내려 되레 무거워졌을까.
서울 종로구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은 25일까지. 02-541-5701. 충남 천안시 ‘아라리오갤러리 천안’은 5월 6일까지. 041-551-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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