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피해 사실을 적극 알리는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이 문화계로도 확산되고 있다.
6일에는 최영미 시인(57)이 지난해 12월 계간 ‘황해문화’ 겨울호에 게재한 ‘괴물’이라는 제목의 시가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달궜다. 시는 ‘En선생 옆에 앉지 말라고/문단 초년생인 내게 K시인이 충고했다/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거든//K의 충고를 깜빡 잊고 En선생 옆에 앉았다가/Me too/동생에게 빌린 실크 정장 상의가 구겨졌다’로 시작한다.
이어 ‘몇 년 뒤, 어느 출판사 망년회에서/옆에 앉은 유부녀 편집자를 주무르는 En을 보고,/내가 소리쳤다/“이 교활한 늙은이야!”/감히 삼십 년 선배를 들이박고 나는 도망쳤다’고 썼다.
문제가 된 작가의 실명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삼십 년 선배’ ‘100권의 시집을 펴낸’ ‘노털상 후보로 En의 이름이 거론될 때마다’라며 존재를 암시적으로 표현했다.
이 시에 대해 ‘문단 내 성폭력 아카이브’ 트위터 계정에는 “문학이란 이름으로 입냄새 술냄새 담배 쩔은 내 풍기는 역겨운 입들”이라며 “계속해서 다양한 폭로와 논의와 담론이 나와야 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그분 말고도 이미 거물, 괴물이 된 작가들의 행태는 끼리끼리 두둔하며 감춰져 왔습니다”라는 글도 이어졌다.
이와 함께 성추문 전력이 있는 감태준 시인(71)이 신임 한국시인협회장에 선출된 사실이 5일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감 시인은 2007년 중앙대 교수로 재직할 당시 제자를 성추행했다는 논란으로 해임됐다. 하지만 피해자의 진술이 일관성이 없다는 이유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후 감 시인은 해임처분 취소 소송을 냈지만 패소했다. 이에 앞서 2016년에는 트위터를 통해 성폭력 문인을 실명으로 고발하는 일이 이어져 시인과 소설가 10여 명이 언급되기도 했다.
영화계에서는 여성 영화감독 B 씨가 2015년 여성 영화감독 A 씨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최근 페이스북에 해시태그 ‘미투’를 달고 폭로했다. A 씨는 술에 취해 B 씨의 신체 일부를 만지며 유사 성행위를 했고 뒤늦게 이를 안 B 씨는 준유사강간 혐의로 A 씨를 고소했다. 지난해 12월 대법원은 A 씨에게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한국영화감독조합은 A 씨를 6일 제명했다.
한 영화계 관계자는 “크고 작은 일들을 당해도 침묵할 수밖에 없던 이들이 하나둘 나서며 물꼬가 터졌다. 주변을 봐도 피해자들은 영화판의 힘없는 ‘을’들인 경우가 많아 씁쓸하다”고 털어놨다.
여성영화인모임은 이달 중 회의를 거쳐 영화인들을 위한 성평등센터를 열 계획이다. 채윤희 여성영화인모임 대표는 “여성은 물론이고 남성 성소수자 모두를 아우르고, 향후 추가로 피해 사례가 접수된 영화인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겠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사실 관계에 대한 정확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2016년 문단 성폭력 폭로 당시 가해자로 지목된 박진성 시인은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수차례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역시 가해자로 지목된 부산 동아대 손모 교수(당시 34세)는 2016년 6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진범은 이후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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