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를 통해 고통 내려놓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면…”
英 자선단체 ‘용서프로젝트’, 자식의 죽음-성폭행 등 겪은 후 용서를 택한 사람들의 고백 묶어
용서의 가치는 계속해서 의심받아왔다. 종교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강권되는 용서에 문제를 제기하는 예술작품도 드물지 않다. 누가 누구를, 왜, 어떻게 용서해야 하며 그것은 무슨 실제로 소용이 있을 것인가. 용서란 섣부른 도피나 그것이 가능하다는 믿음에서 나오는 맹목적 집착 아닌가. 용서에 대한 이런 광범위한 반감의 시선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래서 이 책에 더 눈길이 간다. 상상하기조차 싫은 인생의 비극을 실제로 경험한 이들의 실화를 담았다.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이던 어느 날 삶을 완전히 뒤바꿔 놓는 비극이 찾아온다. 마트 계산대에서 일하다, 혹은 여느 때처럼 집으로 돌아와 현관문을 열다가 아들이, 엄마가, 딸이, 살해됐다는 걸 알게 된다. 믿기지 않는다. 모든 게 비현실적이다.
사건 이후의 모든 것은 예전과 다르다. 피해자 가족들은 극심한 혼란과 고통 속에 빠진다. 자신들에게 일어난 일을 이해하기 위해 애쓰지만 상처는 극복되지 않는다. 분노, 절망, 불안, 자기학대가 되풀이된다. 이들의 이야기가 놀라운 건 여기서 그들이 내린 완전히 다른 선택 때문이다. 그들은 일반적이지 않은 결단을 내린다. 용서다. 완벽히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용서의 길을 택한다. 사연과 용서의 형태는 다르지만 모두 묵직한 울림을 준다.
런던에 살고 있던 아이도우 부부의 셋째 아들 데이비드는 자택 근처 공원에서 살해된다. 아들을 죽인 범인은 비슷한 또래의 소년이다. 몇 년을 고민하다 아들을 죽인 소년을 만나러 간다. 소년은 교도소 안에서 용서해 달라며 펑펑 운다. 어떤 사이였고, 왜 죽였는지 알고 싶었던 부인은 그때야 소년이 아들을 아무 이유 없이 죽였단 걸 알게 된다. 그냥 거기 칼이 있었다고. 그녀가 무너지듯 울며 내뱉는 질문이,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나는 데이비드 때문이 아니라 너 때문에 울고 있단다. 네 인생에 무슨 짓을 한 거니?”
캐시는 발레 무용수이자, 미인대회에서 우승하기도 한 사랑스러운 딸이 일하러 간 타지에서 잔혹하게 살해된 후 삶의 이정표를 잃어버린다. 하지만 선고 공판 즈음 가해자의 어머니를 법정에서 만난 뒤 살해당한 아이의 어머니로 사는 것보다 더 가혹한 삶이 있을 수 있음을 깨닫는다. 살인자인 아들을 둔 어머니는 온몸을 떨면서 자신에게 걸어온다. 캐시는 알 수 없는 깊은 연민을 느낀다. 물론 아직 딸을 죽인 살해범은 만나지도, 용서하지도 못했다. 그러나 그곳을 향해 나아간다. 그녀는 “우리가 설명하지 못하는 것이 너무 많지만 그 의문들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영국의 한 저널리스트가 시작한 비영리자선단체 ‘용서 프로젝트’에서 자신의 경험을 공유한 이들은 책 몇 권으로 풀어놔도 성이 차지 않을 것 같은 끔찍한 아픔과 그것을 극복하려는 시도를 정확하고 간결하게 회고한다. 내전 중 반군에게 성폭행당하고 눈앞에서 아들이 살해당하는 걸 지켜봐야 했던 시에라리온의 세타 조는 가해자가 용서를 구하며 내미는 손을 어렵게 잡은 뒤 이렇게 말한다.
“그의 손을 잡았을 때 나는 흐느끼고 있었다. 절망감 때문이 아니라 어쩌면 이 끔찍한 과거의 고통을 내려놓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안도감 때문이었다.”
저자는 “용서가 모든 문제를 관통하는 마법의 총알이나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상처에서 탄력적으로 회복할 수 있는 하나의 방식임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말한다.
여전히, 누구도 쉽게 답을 내리거나 강요할 수는 없다. 하지만 무너진 삶을 되살리고 회복시킬 놀라운 잠재력이 어쩌면 우리 안에 있을 수 있음을 이 책은 더없이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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