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콩나물 팍팍 무쳤냐”… 국민 울고 웃긴 예능史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2월 10일 03시 00분


◇웃음의 현대사/김영주 지음/384쪽·1만5000원/웨일북

광복 직후 서울 거리, 아코디언을 멘 열아홉 청년에게 한 남자가 다가왔다. 악극단의 악사가 부족하니 같이 하자는 제안이었다. 청년은 아버지가 화를 낼 거라고 생각한 데다 책방주인을 꿈꾸던 터라 고개를 저었다. 단원이 모자라 급했던 남자는 청년의 아버지를 찾아갔고, 아버지는 사흘만 ‘알바’를 하라며 승낙했다.

사흘째, 악단의 코미디 전담 배우가 사라졌다. “야, 아코디언! 네가 해. 맨날 봐서 대충 알잖아!” 얼떨결에 무대에 서서 마구 대사를 지어낸 아코디언 연주자. 그런데 관객들이 웃고 난리가 났다. 배삼룡, 서영춘과 함께 코미디언 1세대 트로이카로 이름을 날리게 될 구봉서였다. 책에 소개된 한 대목이다.

‘웃음의 현대사’는 일제강점기 신파극부터 최근의 토크쇼까지 예능의 역사를 정리한 책이다. 방송작가답게 정제된 문어체가 아니라 말하는 듯한 문장으로 썼다. 배우보다 변사의 활약이 두드러졌던 일제강점기 극장, 마그네틱테이프가 보급되지 않아 모든 방송을 생방송으로 해야 했던 1950년대 라디오드라마 시대를 지나 컬러TV가 보급되면서 본격적으로 열린 TV코미디 무대 이야기까지 ‘웃음의 역사’를 들려준다.

신군부 때 방송 출연이 금지되기도 했지만 시련도 웃음으로 극복한 이주일의 시대, 1990년대를 휩쓸었던 개그맨들의 토크쇼, 제작진이 상황만 펼쳐놓을 뿐 개입하지 않는 최근의 관찰예능까지 다양한 희극이 소개된다.

저자가 정리하는 웃음의 역사에는 웃음을 위한 코미디언들과 제작진의 분투도 읽을 수 있다. “‘우리는 웃음을 위해 이 땅에 태어났다’를 좌우명으로 삼고 사는 사람들의 무한한 노력을 통해 웃음은 비로소 세상에 나온다”는 저자의 말이 이해되는 대목이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웃음의 현대사#김영주#광복#이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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