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이 한줄]표심 좇는 정치인과 GM의 노림수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2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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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질서와 정의를 확고하게 지켜낼 만큼 힘이 강력해지기 위해서는 정치인들이 ‘모든 사람들의 불만을 해소해주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변화된 환경에 맞도록 적응해 나가는데 필요한 정책들이 많은 사람들의 불만을 사는 것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정치인은 사람들이 원치 않는 일은 하지 않으려 한다.―법 입법 그리고 자유(F A 하이에크)》

GM이 군산공장 폐쇄 카드를 꺼냈을 때 하이에크의 이 말이 떠올랐다. 하이에크는 정부가 지켜야 할 질서와 정의가 바로 시장경제원칙임을 주장했다. 예를 들어 기업이 소비자의 선택을 받지 못해 적자가 나는 건 자연스러운 이치인데, 정부가 나서서 기업을 살려 놓는 건 시장경제원칙에 어긋나는 정책이라고 봤다. 동시에 하이에크는 시장경체원칙에 충실한 정책이 사람들의 불만을 살 수밖에 없다는 점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경쟁력을 상실한 기업을 억지로 살려 놓는 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믿었다. 하이에크는 이 지점에서 가장 큰 문제로 ‘정치인’을 꼽았다. 그의 말대로 정치인들은 많은 사람들의 불만을 사는 일을 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GM 본사는 정부가 많은 것을 해결해 주길 바라는 국민 정서와 ‘민심’, ‘민의’라는 말로 정책을 만드는 정부와 정치권의 특성을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우리가 떠나면 국민들이 불만을 가질 텐데 정부가 해결 안 할 거야?’라고 배짱을 부리는 모양새다. 도와주면 남고 아니면 말고 식이다.

정부와 정치권은 곧바로 반응했다.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여차하면 자구책 없이 한국GM에 수조 원에 달하는 지원을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GM의 과거를 떠올려 보자. GM은 이익이 나지 않는 공장과 해외 지사는 냉정하게 떠난다는 방침을 고수했다. 호주 정부는 GM호주 법인이 철수 신호를 보내자 2003년부터 12년 동안 무려 2조3000억 원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GM은 2014년 정부 보조금이 끊기자 호주를 떠났다. 우리가 그 희생양이 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GM은 정치인들의 심리를 잘 알고 이용하고 있다고 본다. 얄밉지만 기업으로서는 좋은 전략이다. 먼 훗날 한국도 GM에 당한 국가였다는 불명예를 얻지 않길 바랄 뿐이다.

변종국 기자 bjk@donga.com
#gm#법 입법 그리고 자유#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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