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피아노 교본으로 더 유명한 작곡가 체르니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2월 20일 03시 00분


그는 베토벤의 제자이며 리스트의 스승이었습니다. 엄청난 계보의 한가운데 자리한 셈이죠. 1920년대 미국의 피아노 교육 잡지는 그를 ‘피아노 기법의 조상’이라고 소개하며 피아니스트들의 ‘계통수(family tree)’를 게재했습니다. 그를 나무기둥의 한가운데 놓고 그의 제자들과 그 제자들이 길러낸 피아니스트 37명의 사진을 실었습니다.

명피아니스트 아르투르 루빈스타인과 클라우디오 아라우, 치프러 죄르지는 그의 제자의 제자의 제자, 즉 ‘3대’ 제자였고, 소련을 대표하는 작곡가였던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도 3대 제자였습니다. 피아노의 조상 격 악기인 하프시코드를 부활시킨 주인공 완다 란도프스카 역시 ‘3대 제자’ 대열에 속하며, 지휘자 겸 피아니스트인 다니엘 바렌보임은 그의 ‘4대 제자’가 됩니다.

이 사람이 작곡한 피아노곡을 연주한 사람은 많지만, 음반이나 라디오로 그의 작품을 들은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독자도 이 사람의 작품을 연주해본 적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짐작이 가시나요. 이 ‘피아노 기법의 조상’은 바로 카를 체르니(1791∼1857·사진)입니다. 내일(21일)은 그의 227번째 생일입니다.

체르니는 세 살 때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고 일곱 살 때는 작곡을 시작했습니다. 열 살 때 베토벤 앞에서 베토벤 소나타 8번 ‘비창’을 연주하자 베토벤은 감탄하며 이 소년을 제자로 삼았습니다. 정기적으로 가르침을 받은 것은 3년이었지만, 체르니는 베토벤이 서거할 때까지 스승의 집에 왕래했으며 그의 자서전 및 베토벤과 교류한 편지들은 베토벤 연구에도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이름을 가장 크게 기억하게 만드는 것은 그가 쓴 피아노 교본들이겠죠. 오늘날에는 꼭 체르니 교본을 치지 않아도 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현대 피아노 기법은 체르니 시대에 비해 크게 확장되었으며, 초급 피아니스트가 기량을 연마하는 데는 20세기 이후 나온 새로운 교재들이 더 효과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체르니 교본’이 가진 권위는 여전히 영향력이 큽니다. 독일의 페르디난트 바이어가 1851년 지은 입문자용 교재(이른바 ‘바이엘’)와 함께 말이죠.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베토벤#카를 체르니#바이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