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베토벤의 제자이며 리스트의 스승이었습니다. 엄청난 계보의 한가운데 자리한 셈이죠. 1920년대 미국의 피아노 교육 잡지는 그를 ‘피아노 기법의 조상’이라고 소개하며 피아니스트들의 ‘계통수(family tree)’를 게재했습니다. 그를 나무기둥의 한가운데 놓고 그의 제자들과 그 제자들이 길러낸 피아니스트 37명의 사진을 실었습니다.
명피아니스트 아르투르 루빈스타인과 클라우디오 아라우, 치프러 죄르지는 그의 제자의 제자의 제자, 즉 ‘3대’ 제자였고, 소련을 대표하는 작곡가였던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도 3대 제자였습니다. 피아노의 조상 격 악기인 하프시코드를 부활시킨 주인공 완다 란도프스카 역시 ‘3대 제자’ 대열에 속하며, 지휘자 겸 피아니스트인 다니엘 바렌보임은 그의 ‘4대 제자’가 됩니다.
이 사람이 작곡한 피아노곡을 연주한 사람은 많지만, 음반이나 라디오로 그의 작품을 들은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독자도 이 사람의 작품을 연주해본 적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짐작이 가시나요. 이 ‘피아노 기법의 조상’은 바로 카를 체르니(1791∼1857·사진)입니다. 내일(21일)은 그의 227번째 생일입니다.
체르니는 세 살 때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고 일곱 살 때는 작곡을 시작했습니다. 열 살 때 베토벤 앞에서 베토벤 소나타 8번 ‘비창’을 연주하자 베토벤은 감탄하며 이 소년을 제자로 삼았습니다. 정기적으로 가르침을 받은 것은 3년이었지만, 체르니는 베토벤이 서거할 때까지 스승의 집에 왕래했으며 그의 자서전 및 베토벤과 교류한 편지들은 베토벤 연구에도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이름을 가장 크게 기억하게 만드는 것은 그가 쓴 피아노 교본들이겠죠. 오늘날에는 꼭 체르니 교본을 치지 않아도 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현대 피아노 기법은 체르니 시대에 비해 크게 확장되었으며, 초급 피아니스트가 기량을 연마하는 데는 20세기 이후 나온 새로운 교재들이 더 효과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체르니 교본’이 가진 권위는 여전히 영향력이 큽니다. 독일의 페르디난트 바이어가 1851년 지은 입문자용 교재(이른바 ‘바이엘’)와 함께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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