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 다니던 시인 청년이 점심 먹으러 나가는 거리에는 작은 꽃방이 있었다. 꽃 가득한 다섯 평 가게를 눈에 담다가 생각했다. “시집서점을 해볼까?” 작은 공간에 꽃 대신 시집을 꽂아놓는 상상을 했다. 문우들이 “말도 안 된다”고 했지만 꿈은 잦아들지 않았다. 몇 달쯤 지나자 친구들이 “어쩌면 될 것 같다”며 조언을 하기 시작했다.
유희경 시인(38)이 서울 서대문구 신촌역로에 2016년 시집서점 ‘위트앤 시니컬’을 열 때만 해도 “생존 기간은 길어야 2년”이라고 했는데, 9개월 만에 마포구에 2호점을 냈다. 최근 기자와 만난 날에도 소상공인 대출 상담을 다녀올 만큼 ‘자영업자’로서의 삶은 녹록지 않다. 그러나 이 분투로 인해 그는 문학의 최전선에서 독자들과 만날 수 있다.
공부를 곧잘 하던 아들이 입시에 실패하자 어머니는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원서를 사들고 왔다. 아들이 시를 제법 쓴다는 논술학원 선생님의 얘기가 생각나서였다. 그렇게 시작(詩作)을 공부하게 된 젊은이가 시인이 된 지 10년째다. ‘불행한 서정의 귀환’(평론가 조연정)이라는 평과 함께 주목받은 시집 ‘오늘 아침 단어’와 ‘당신의 자리―나무로 자라는 방법’을 냈고 새 시집 준비도 한창이다.
기자와 얘기를 나누는 중에도 그는 자주 계산대를 왔다 갔다 했다. 서점이 빠르게 자리 잡았음을 짐작하게 했다. 해외 인지도도 생겨서 아사히신문의 한국 책방 취재기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고, 오사카 벼룩시장의 제안으로 일본에서 한국 시집을 팔기도 했다.
“한류 바람으로 한국어를 배운 일본인이 많은데, 소설은 분량이 많으니 부담이 작은 시집을 읽어보겠다고 하더라고요.(웃음)”
앞선 세대와의 차이를 묻자 그는 “(선배들이) 근사한 궁전을 지었는데 (젊은이들이) 그 안에 텐트를 친 상황”이라고 했다. 문학을 높은 성이 아니라 소박한 대상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이런 설명도 더했다. “글을 쓰기 위해 원고지를 꺼내던 세대와 노트북을 켜는 세대의 차이이기도 하다. 예전엔 쓰다가 실패하면 종이 한 장이 날아갔지만, 지금은 버튼만 누르면 새 화면이 나온다.” 문자의 무게감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누가 요즘 시를 읽느냐’는 소리를 들으면서 시인이 되고 친구 중 팔 할이 문학을 알지 못하는 것, 그는 21세기의 문인이란 이런 현실이라고 했다. 그러나 문학이 더 이상 고매한 것이 아니기에 “젊은 시인들은 평론가를 거치지 않고 독자와 직접 소통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즐겁게 받아들인다”며 “대단한 목적이 아니라 소소한 가치를 지향하면서 살아가는 요즘 젊은이들의 모습이기도 하다”고 시인은 말했다.
시집서점의 판매량은 매달 1000권 안팎이다. 그는 구매자들이 문학이 소박해졌기에 만날 수 있는 ‘코어 독자층’이라고 했다.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매일매일 확인할 수 있다는 시인은 “새로운 세기가 그 순도의 저변을 새롭게 확장하는 때임을 믿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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