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이 아니다. 사제와 수도자(수사)들은 관 뚜껑 닫히기 전까지 누구보다 더 경건하고 조심스럽게 살아야 한다.”
2일 경북 칠곡군의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에서 만난 박현동 아빠스(48)는 최근 불거진 천주교수원교구의 한 모 신부와 관련한 성추문에 대해 단호하게 말했다. 교계에서 드문 울릉도 출신인 그는 2013년 43세로 국내 최연소 아빠스이자 왜관수도원장으로 선출됐다. 아빠스는 ‘베네딕도회 규칙서’를 따르는 수도회 수장에 대한 칭호이자 직함으로 동방 수도원에서 수도자들이 지도자이자 영적 스승을 ‘아빠(abba)’라고 부른 데서 유래했다. 교회법상 주교와 동등한 지위에 있고 한국천주교주교회의 멤버다.
-주교회의 사과 발표가 있었지만 비판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그동안 신자 뿐 아니라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한국 가톨릭을 믿고 신뢰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이번 사건으로 ‘가톨릭도 어쩔 수 없네’라는 비판이 많아 가슴 아프다. 각 교구와 수도원은 사제와 수도자들의 영성을 강화하는 교육을 강화하고, 피해자를 위한 조치도 제대로 취해야 한다. 앞으로 교회 공동체가 제대로 쇄신해 하느님을 향해 경건하게 나아갈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그는 5~9일 열리는 주교회의 춘계총회에서 “뼈저린 반성과 함께 여러 의견이 나올 것”으로 예상했다.
-반성할 부분이라면.
“2014년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한국 교회가 가난한 사람보다는 중상층 이상을 위한 모습을 많이 갖고 있다. 힘들고 가난한 사람들 위한 도움과 노력을 더 많이 해 달라’고 당부했다. 한국 가톨릭이 지난 80년 동안 급성장하고 사회적인 목소리도 많이 냈지만 얼마나 어려운 이들에게 실제로 다가섰냐는 반성이 필요하다.”
-성추문, 외부에서만 몰랐지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도 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문제는 가톨릭교회가 직면한 오랜 숙제다. 미국과 유럽 교회는 성과 관련해 여러 문제를 겪었거나 겪고 있는 중이다. 정말로 사제, 수도자들은 관 뚜껑 닫히기 전까지는 조심하며 살아야 한다. 교회 내에서 여성의 존엄성과 역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올바르게 반응해야 한다.”
-수도원 차원에서는 어떤 과정이 이뤄지고 있나.
“무엇보다 ‘영적(靈的) 균형’이 중요하다. ‘기도하고 일하라’는 베네딕도회의 전통이다. 그런데 기도는 빠진 채 일만 하면 문제가 생기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한국 교회가 이제는 내적, 영적 부분의 부족한 점을 돌아보고, 강화해야 한다.”
-왜관수도원장은 북한 지역의 덕원자치수도원구 자치구장 대리이기도 하다.
“우리 수도원은 1949년까지 원산 부근 덕원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옛 시설은 원산농업대학 건물로 쓰고 있다고 한다. 덕원 수도원으로 입회해 생존해 있는 이석철 수사님은 지금 104세로 그 과정을 모두 지켜본 산증인이다. 미래에 통일된다면 그 땅에 가서도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
-6·25 전후 희생된 38위에 대한 시복은 어떻게 되고 있나.
“지난해 10년간의 예비조사가 마무리됐다. 교황청 시성성에 제출한 자료만 24개 박스, A4용지로 1만 4000쪽 분량이다.”
박 아빠스는 1950년 12월 흥남철수작전 당시 피란민 1만4000명을 기적적으로 구출한 ‘크리스마스의 기적’의 주역 마리너스 수사의 일화도 언급했다. 피란민을 실은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레너드 라루 선장은 전쟁 뒤인 1954년 베네딕도회에 입회해 미국 뉴저지주 뉴튼수도원에서 마리너스(Marinus) 수사로 살다 2001년 선종했다. 왜관수도원은 경영이 어려워진 이 수도원을 2001년 인수했다.
-최근 시복이 추진되고 있는 마리너스 수사는 어떤 과정을 통해 수도자가 됐나.
“빅토리아 호는 기적적으로 귀환하고, 5명의 새로운 생명까지 탄생했다. 나중 회고를 보면, 그 분은 배의 키를 잡고 있는 게 자신이 아니라 하느님의 손길이라고 느꼈다고 한다. 이후 47년 간 수도원 밖으로 거의 나오지 않은 채 평생 성물방 매장에서 일하며 기도하는 삶을 살았다. 오늘날의 사제, 수도자들이 본 받아야 할 삶이다.”
칠곡=김갑식 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3일 오전 6시반 경북 칠곡의 왜관수도원 대성전. 파이프 오르간의 장중한 소리와 함께 신부와 수도자 등 70여명이 차례로 들어섰다. 꽤 이른 시간이지만 수도원 내 손님의 집에서 하룻밤을 지낸 방문객과 일반 신자 70여명도 미사에 참석했다.
이에 앞서 오전 5시20분 아침기도에 이어 30분의 묵상 시간이 있었다. 제대(祭臺) 주변을 빼면 모든 조명이 꺼진 상태의 묵상은 내면을 돌아볼 수 있는 깊은 침묵의 순간이다. 어둠 속의 경건함에 기침 소리조차도 부담스럽다.
‘기도하고 일하라’라는 베네딕도 성인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는 왜관수도원은 1909년 설립된 국내 최초의 남성 수도공동체다. 1920년대 활동 중심지를 함경남도 원산 부근의 덕원으로 옮겼다 6·25전쟁 이후 1952년 왜관에 정착했다.
수도원 내 이정표는 금속공예실, 유리화 공예실, 분도출판사, 분도가구공예사 등이 표시돼 있어 베네딕도회가 추구해온 영성과 노동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다. 수도원 회원들은 하루 5차례 한 곳에 모여 기도를 하고, 나머지 시간은 정해진 작업장에서 일을 한다. 외부인들이 미사에 참여할 수 있도록 개방돼 있고, 손님의집은 주말에 방을 구하기 어려울 정도로 명소가 됐다. 한 방문객은 “가톨릭 신자는 아니지만 종교적 영성이 가득한 수도원 미사를 볼 수 있어 느낌이 특별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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