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먹는 점심 메뉴가 주로 무얼까 하고 꼽아봤더니 대다수 국물이 있는 음식입니다. 설렁탕, 부대찌개. 순댓국, 짬뽕, 해장국, 육개장, 소머리국밥, 김치찌개….
이 정도라면 대중가요 제목인 ‘사랑 없이 난 못 살아요’라는 명제를 수긍하지 못하더라도, ‘국물 없이 난 못 살아요’만큼은 분명합니다. 말하자면, 저의 한 끼니 완성은 국물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지요.
음식 관련 자료에 따르면 국을 뜻하는 탕, 확, 갱 등에 대한 개념이 예전에는 분명했지만 이제는 그 구분이 모호하고 탕 말고는 그런 용어를 잘 쓰지도 않습니다. 심지어 국은 가마솥과 같은 큰 용기에 대량으로 끓여 한 그릇씩 덜어 내놓는 음식이고, 탕은 음식 재료를 작은 솥이나 냄비에 넣고 직화로 끓여 용기째 내놓는 것을 말함에도 실제 설렁탕이나 곰탕의 경우에 일일이 따로 끓이는 경우가 드뭅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설렁탕과 곰탕의 경계도 시나브로 무너졌습니다. ‘설렁탕 같은 곰탕’ 혹은 ‘곰탕 같은 설렁탕’이 이제 대세입니다. 여기에 소머리국밥까지 가세하여 말 그대로 고깃국의 ‘무정부 상태’가 도래한 느낌입니다.
사람에 따라서 물에 빠진 고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 저는 구워 먹는 고기도 좋아하지만 물에 끓여 익힌 고기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고기에서 우러나오는 육수의 감칠맛을 좋아하는 거지요. 그런데 고기를 물에 넣는다는 것은 빈곤의 시대에 양을 늘리기 위한 방편으로 시작했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런 메뉴 중에서 주방에서 가장 빨리 나오는 음식이 탕 종류이고 대표적인 것이 설렁탕일 겁니다. 개인적으로는 내장이나 뼈를 많이 넣어서 지나치게 뽀얗거나 기름이 둥둥 뜬 설렁탕보다는 맑은 국물의 곰탕 같은 설렁탕을 선호하는 편입니다.
‘몸이 천 냥이면 눈은 구백 냥’이라는 속담처럼 설렁탕의 경우에도 깍두기의 존재가 딱 그렇습니다. 아무리 탕이 맛있어도 깍두기(혹은 섞박지)와 김치가 익지 않았거나 맛이 없으면 수저를 내려놓고 싶은 생각까지 듭니다. 맛이 없는 설렁탕은 깍두기 맛에라도 먹을 수 있지만, 맛이 없는 깍두기는 설렁탕을 결국 남기게 하지요. 저의 경우, 탕을 절반 정도는 그대로 먹고, 나머지에 곰삭은 깍두기 국물을 적당히 넣어 휘저어 먹습니다. 어느 유명 곰탕집에서는 아예 주전자로 깍두기 국물을 내어주는데 이를 깍국이라고 하던가요? 설렁탕은 식당마다 독특한 맛 차이는 있지만 대개 ‘오십보백보’인데, 결국 깍두기가 설렁탕을 완성하는 화룡점정입니다. 어느 시인의 표현을 빌려서 말하자면, ‘설렁탕을 키운 건 8할이 깍두기’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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