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말러도 공감한 베토벤의 이별 정서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13일 03시 00분


지난주 서울엔 두 차례나 봄비가 내렸습니다. 이번 주 중반에도 봄비가 예고되어 있군요. 봄에 내리는 비는 ‘이별’을 떠올리게 합니다. 학창 시절 국어시간에 배운 이수복의 시 ‘봄 비’(이 비 그치면/내 마음 강나루 긴 언덕에/서러운 풀빛이 짙어 오것다…)와 고려시대 정지상의 한시 ‘송인’(送人·비 갠 긴 둑엔 풀빛이 짙어 가는데/남포에서 임 보내며 슬픈 노래 부르네…)이 떠오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정지상의 ‘송인’을 읊조리다 보면 구스타프 말러가 작곡한 ‘대지의 노래’도 생각납니다. 이 곡은 교향곡과 가곡집의 중간쯤에 있는 곡인데, 독일어로 번역된 한시에 곡을 붙였습니다. 마지막 악장 ‘송별’(Der Abschied) 끝부분 가사는 이렇습니다. ‘사랑하는 대지에 봄이 오면 어디에나 꽃이 피어나고 새로운 초록빛이 돋아나리라. 그리고 멀리 푸른빛이. 영원히, 영원히….’

괜히 ‘센티멘털’해졌나요. 그런데 이 곡이 베토벤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26번 ‘고별’입니다. 이 곡의 첫 악장은 계이름 ‘미-레-도’로 시작합니다. 베토벤은 악보의 이 세 음에 ‘Le-be-wohl’(레베볼·독일어로 ‘잘 지내십시오’라는 뜻)이라고 써넣었습니다. 그가 이 곡을 쓴 1809년에 나폴레옹이 독일과 오스트리아로 침공해 왔습니다. 베토벤의 후원자 루돌프 대공도 피란을 가야 했습니다. 이별이 아쉬웠던 베토벤이 대공에게 주는 메시지를 악보에 써넣은 것입니다.

한 세기 뒤 말러는 ‘대지의 노래’에서 이 ‘미-레-도’의 동기를 활용했습니다. ‘사랑하는 대지’를 노래하는 부분에서 이 동기를 사용해 이별의 정서를 강조한 것입니다. 그는 얼마 뒤 작곡한 교향곡 9번 마지막 악장에서도 ‘미-레-도’의 ‘고별’ 동기를 강조했습니다. 이 두 곡은 말러가 심장 이상으로 오래 살 수 없을 것을 직감한 뒤 쓴 작품들이었습니다.

15일 대전예술의전당 아트홀에서 열리는 ‘양극단에서 음악을 만나다’ 콘서트에서 대전시립교향악단이 상임지휘자 제임스 저드의 지휘로 말러의 마지막 교향곡이 된 교향곡 9번을 연주합니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베토벤#말러#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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