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계는 시간이 유난히 더디게 흐른다. 디지털 음원 시대지만 클래식만큼은 공연장과 CD, LP를 고수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다른 장르에 비해 형식과 음감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최근 이런 분위기도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디지털로 클래식 음원이나 공연 정보를 제공하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 등 다양한 서비스가 등장하고 있다. 최근 이런 흐름은 클래식 지식과 새로운 감각으로 무장한 ‘클래식 스타트업’이 이끈다.
요즘 ‘클래식매니저’란 앱으로 ‘클알못’(클래식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서 ‘클잘알’(클래식을 잘 아는 사람)으로 환골탈태한 이들이 상당하다. 스타트업 ‘아티스츠카드’가 지난해 출시한 클래식매니저는 초보도 쉽게 클래식에 접근할 수 있도록 돕는다.
예를 들어, 드뷔시의 ‘달빛’을 음성 검색하면 거의 모든 버전의 음원을 만날 수 있다. 드뷔시의 생애, 해당 곡에 얽힌 일화는 물론이고 악보도 상세하게 제공한다. 아티스츠카드 대표인 정연승 작곡가는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자동검색 큐레이션(취사선택) 시스템을 개발했다”고 했다. 클래식매니저는 지금까지 15만 명이 다운로드했다.
‘위드클래식’은 크고 작은 클래식 공연 정보를 아우르는 인터넷 플랫폼이다. 대형 기획사에서 진행하는 공연이 아니더라도 발품을 들여 찾아낸 1인 공연이나 무료 공연, 동네 공연 정보까지 제공한다. 성악을 좋아해 무작정 업계에 뛰어든 웹디자이너 출신 임재한 대표는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기획한 공연을 판매하는 서비스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밖에 오케스트라 게임 음악을 만드는 ‘플래직’과 악기 연주 시 반주 음을 들려주는 ‘포케스트라’를 만든 ‘이스트컨트롤’도 눈에 띄는 클래식 스타트업. 클래식 분야 해설사를 양성하는 ‘모차르트마술피리’와 아이들 눈높이에 맞춘 콘텐츠를 기획하는 ‘오르아트’도 있다.
사실 클래식 스타트업이 늘어난 배경에는 한계에 봉착한 클래식계가 찾은 ‘탈출구’의 성격도 있다. ‘클래식에미치다’ 운영자인 안두현 양평필하모닉오케스트라 지휘자는 “갈수록 클래식계 상황이 어렵다 보니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전공자가 많다”며 “이들이 활로를 모색하는 차원에서 다양한 스타트업으로 눈을 돌리는 실정”이라고 진단했다.
해외에서도 클래식 스타트업은 이미 대세로 자리 잡았다. 국내 클래식 연주자들의 미발표 음원을 제공하는 스트리밍 서비스 ‘클래시컬 네트워크’는 네덜란드 스타트업 ‘프라임포닉’을 본떠 만들었다. 독일 스트리밍 서비스인 이다지오(Idagio), 세계 연주자들의 구인구직을 돕는 덴마크의 트루링크트(Truelinked), 맞춤형 마우스피스를 판매하는 영국의 SYOS 등이 각광을 받고 있다.
노승림 음악평론가는 “최근 적극적으로 클래식을 소비하려는 애호가들이 등장하며 이들을 겨냥한 다양한 서비스가 시장에 출현한 셈”이라며 “결국 장기적으로 클래식 시장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음악평론가 한정호 씨는 “문화 관련 정부지원금 제도가 늘어나면서 클래식 관련 사회적 기업이 많아진 것도 한몫했다”고 분석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