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 살면서 갖고 있던 가면도 훅 하고 없어지고, 방패도 내려놓게 되는 힘이 있는 것 같아요.”(가수 이상은)
201호, 202호, 203호…. 호텔 방 호수는 도심의 아파트와 별반 차이가 없다. 그러나 1월 30일 첫 방송을 한 올리브TV ‘달팽이 호텔’에선 옆방 이웃과 친구가 되고 치유도 받는다. 함께 식사를 나누고, 작은 음악회를 열고, 서로의 ‘마니또’(비밀 수호천사)가 되며 일면식도 없던 사람과 지란지교를 맺는다.
최근 현대인들의 잃어버린 ‘관계 찾기’에 주목하는 예능 프로그램들이 등장하고 있다. 유명인의 사생활을 관찰하거나 국내외 여행지를 소개하던 리얼리티 예능이 한 단계 더 도약해 진정성 있는 ‘사람 사귀기’를 보여주려 노력한다. 특히 ‘달팽이 호텔’은 음악가나 배우, 정치인 등이 성별과 세대, 직업을 뛰어넘어 한 장소에서 함께 힐링을 추구하는 콘셉트다.
세대를 뛰어넘은 사부와 제자들이 동거하는 형식의 예능 SBS ‘집사부일체’도 비슷한 맥락이다. 1인 가구가 흔해진 지금, 세대 간 장벽을 줄이고 사부의 생활 방식에서 배울 점을 찾는다. 동시간대 막강한 주말 예능 틈바구니에서도 시청률 10% 안팎을 기록하며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다.
대세 예능으로 꼽히는 MBC ‘나 혼자 산다’도 마찬가지. 과거엔 1인 생활을 조명하는 데 치중했다면, 최근엔 ‘혼자 살지만 함께 관계를 맺는’ 출연진의 모습을 보여주며 더 많은 인기를 끈다. 출연자인 전현무와 한혜진은 실제로 연인으로 발전했다. KBS ‘하룻밤만 재워줘’는 외국인에게 무작정 숙소 제공을 요구하는 포맷이라 민폐 논란도 일었지만, 정분을 쌓은 이탈리아 가족과 인연을 이어가는 모습으로 감동을 줬다.
이런 ‘관계 찾기’ 예능이 요즘 주목받는 이유가 뭘까. ‘달팽이 호텔’ 2∼5회에 출연했던 배우 김재화의 모습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그는 방송에서 “요즘 자존감이 떨어진 상태였다. 내게 주어진 엄마라는 역할을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는 속내를 털어놓았다. 그러자 낯선 타인이었던 투숙객들이 진심 어린 조언을 하며 그를 감싸 안았다. 때로 인간은 가까운 지인이나 거미줄처럼 이어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아니라, 선입견 없이 자신을 바라봐 주는 새로운 만남 속에서 존재의 의미를 찾는다.
전문가들은 이를 기존 관찰 및 여행 예능이 가지고 있던 ‘교류의 장’이란 코드가 심화 확장되는 과정이라고 분석한다. 예능이 단순한 즐거움에서 그치지 않고 인간의 외로움이나 허무함을 건드리는 지점까지 나아간 것이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현대인들은 개인의 영역을 지키면서도 어울려 살 수 있는 공간을 원한다”며 “이런 삶의 방식을 통해 에너지를 얻길 원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예능에도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결국 ‘보여주기’가 주목적인 방송이 얼마나 진정성을 가질 수 있을지는 앞으로도 고민해야 할 숙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