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신학자 하비 콕스
프란치스코 교황이 비판한 신격화된 시장의 민낯 파헤쳐
거대은행과 거대교회 비교하며 종교 관점에서 경제 문제 이해
미국 하버드대 명예교수인 저자(89)는 1988년 뉴욕타임스(NYT)가 선정한 ‘20세기 10대 신학자’ 중 한 명이다. 그 이력을 빼도 그는 국내에서도 알려진 신학자이고,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36세 때인 1965년 출간한 ‘세속도시’는 세계적으로 100만 권 이상 판매되며 그에게 명성을 안겨줬다. 세속이라는 단어의 부정적 이미지와 달리 그의 세속은 도시화와 개인주의의 확산을 통한 교회와 사회 변화의 원천이었다. 성경에 대한 문자적, 근본주의적 해석을 거부한 그는 흑인민권운동에 참여한 것을 비롯해 실천을 통한 사회 변화를 강조해 남미의 해방신학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 책의 원제는 ‘The Market as God’(2016년). 도발적 제목을 넘기면 첫 페이지에 ‘감사와 희망의 마음을 담아 프란치스코 교황님께 이 책을 바칩니다’라는 말이 나온다. 감히 시장(市場)을 신(神)으로 만들더니 난데없는 감사말은 뭔가?
“우리는 새로운 우상을 만들어냈다… 환경같이 허약한 것은 무엇이든지 신격화된 시장의 이익 앞에서 무방비 상태가 된다.”(프란치스코 교황)
교황의 권고인 ‘복음의 기쁨’을 비롯해 교황이 즉위 이후 보여준 행보가 그를 크게 고무시켰다는 게 저자의 고백이다. 교황은 유엔총회 연설을 비롯해 기회 있을 때마다 가난한 이들의 빈곤을 외면하고 지구의 건강보다 이윤을 우선시하는 국가와 기업에 대한 비판을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기업과 금융이라는, 발을 디뎌본 적 없는 대륙을 향한 여행’의 산물이다. 또 종교학의 관점에서 바라본 ‘신학의 렌즈’가 작금의 경제 문제를 이해하는 데 유효한 빛을 비춘다는 게 그의 결론이다.
구순을 바라보는 그의 눈높이에서 종교만을 비판하는 것은 제자리걸음일지도 모른다. 종교에 대한 따가운 질책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주된 공격 목표는 신으로 대우받고 있는 시장, 특히 부도덕한 금융자본이다.
저자는 시장과 종교의 영역에서 공통점이 많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시장에 맡겨야 한다” “시장은 결코 틀리지 않는다”는 시장의 무오류에 대한 속설이 있다. 여기에 지난 200년간 기독교계에서 큰 논쟁의 하나였던 교황 무오류성의 문제를 비교하는 식이다.
‘시장은 사람을 어떻게 창조했는가’ ‘애덤 스미스: 신학자이자 예언자’ ‘거대은행과 거대교회’ ‘시장과 세상의 종말’ ‘시장의 영혼 구하기’…. 때로 고개를 갸우뚱할 수 있는 도발적인 주장들이 책 여기저기에서 튀어나온다. 한데 논리적인 비약으로 느껴지는 주장에도 “아,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라는 묘한 설득의 힘이 깔려 있다. 요즘 모처럼 관심을 받고 있는 컬링의 스톤이 각고의 스위핑에 따라 신기하게도 목표를 찾아가는 것처럼 말이다. 이는 순전히 신학은 물론이고 경제학 문학 사회학 인류학 등 다양한 분야에 걸친 저자의 내공과 풍부한 사례를 통해 가능해진 것이리라.
이 책,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느냐에 관계없이 의외로 읽는 재미가 있다. 그러면 신이 된 시장의 미래는 어떨까? 궁금증으로 남겨둔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