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고려가요부터 방탄소년단까지 이어지는 노랫말의 세계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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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의 언어/한성우 지음/364쪽·1만6000원/어크로스

그룹 방탄소년단. 동아일보DB
그룹 방탄소년단. 동아일보DB


노랫말에 관한 책이다.

저자는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다. 노래방 업체 홈페이지에 나온 노래 목록을 기반으로 다른 문헌을 더해 2만6250곡의 국내 유행가를 선별했다. 유행가가 태동한 1920년대의 ‘희망가’ ‘사의 찬미’부터 방탄소년단의 노래까지 망라했다. 노랫말을 전부 나열하면 원고지 7만5000장 분량이 됐다. 이들 문장을 컴퓨터에 입력해 다양한 단위와 관점에서 분석했다.

방대한 언어학적 통계가 책의 뼈대다. 이를테면 1950년대까지 ‘사랑’이란 말이 쓰인 노래는 전체의 2.19%에 그치지만 2000년 이후에는 그 비율이 11.03%까지 오른다. ‘러브’와 ‘love’까지 합치면 65.22%다.

시대별로 제목과 가사의 평균 글자 수도 비교했다. 제목 글자 수는 1949년 이전(5자)과 2000년 이후(5.7자)에서 큰 차이를 안 보이지만 가사 글자 수는 같은 기간 158.4자에서 486.4자로 폭증했다.

제목에서는 ‘사람’(352회)보다 ‘사랑’(2237회)이, 가사에선 ‘그대’(4만1455회)보다 ‘나’(22만9272회)가 훨씬 많이 등장했다. 노랫말 세상에서 계절의 왕은 제목의 경우 ‘겨울’, 가사의 경우 ‘봄’이었다. 노랫말에 자주 등장하는 직업도 따로 있다. ‘섬마을 선생님’과 ‘서울 여선생’이 각광을 받는가 하면 해외여행이 힘들었던 1960년대에는 선원을 뜻하는 네덜란드어 ‘마트로스’의 일본식 표기인 ‘마도로스’가 노래 속을 주름잡았다.

통계가 열심히 할 일 하는 이 책의 진짜 미덕은 통계 밖에서 나온다. 딱딱한 논문에 그칠 수도 있었던 책은 필자의 주관적 감성과 세계관이 담긴 맛깔스러운 에세이와 결합되며 재미를 배가한다.

‘흐느끼는 색소폰 소리’(주현미 ‘눈물의 부르스’)의 야릇한 가사로 운을 떼고는 ‘아’ ‘랄랄랄라’ 같은 소리의 노랫말 속 등장 빈도수 통계를 보여준 뒤 ‘미쳤어’(손담비) ‘링딩동’(샤이니)으로 넘어가면서 고려가요와 아이돌 노래까지 연결하는 필자의 통찰력과 재치가 돋보인다.

랩을 만들거나 작사를 하는 이들에게도 도움이 될 책이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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