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이 한줄]울프의 시대와 오늘날 미투, 그리고 100년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20일 03시 00분


《이제 여러분의 힘으로 그녀에게 이런 기회를 줄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지고 있습니다.―‘자기만의 방’(버지니아 울프·민음사·2016년)》

자기만의 방과 1년에 500파운드의 돈.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의 정신적·경제적 독립을 위해 이 두 가지가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영국 여성들이 막 투표할 권리와 자신의 이름으로 재산을 가질 권리를 갖게 된 때였다.

울프의 에세이 ‘자기만의 방’은 약 100년 전 그가 여자대학 두 곳에서 했던 강연을 토대로 정리한 글이다. 당시 여성들은 학교를 다녀도 학위를 딸 수 없었고 도서관 출입조차 쉽지 않았다. 남편의 허락 없이는 단 한 푼도 마음대로 쓸 수 없었던 시대였다.

그로부터 100여 년이 흐른 지금, 여성들은 대학에 다니고 투표를 한다. 하지만 여성 앞에 놓인 산은 여전히 많다. 보이지 않는 천장, 결혼과 함께 찾아오는 경력 단절의 위기. 자신의 신체를 지키고, 한 인간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주장하는 것도 때로는 너무나 어려운 게 현실이다.

요즘 세간의 화두는 단연 ‘미투’운동이다. 울프가 살던 시대에 책을 읽고 공부를 하는 여성을 비웃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처럼, 지금도 사회의 부조리를 비판하는 여성을 조롱거리로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여성들을 사회 활동에서 배제할 수도 있어 논란이 일고 있는 ‘펜스 룰’까지 등장했다. 이런 일들을 보며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상황이 더 악화되는 것은 아닌가 싶어 맥이 빠지기도 한다.

울프는 그럼에도 다음 세대를 위해 ‘가치 있는 일’을 해야 한다고 했다. 지금의 어려움에 굴복하면 자신의 목소리로 이야기할 수 있는 다음 시대의 ‘그녀’들은 절대 출현할 수 없다고 말했다.

지금은 당연하다고 여기는 여성 참정권과 경제활동은 모두 울프와 이름 모를 많은 사람들이 단순한 투덜거림을 넘어 연단에 서고 글을 쓰는 등 의미 있는 행동을 했기 때문에 쟁취할 수 있었다. 지금의 우리도 어렵게 시작된 미투운동이 단순한 폭로전이나 저급한 가십거리로 전락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100년 뒤 태어날 사람들의 미래가 달라질 것이다.

손가인 기자 gain@donga.com
#책#자기만의 방#버지니아 울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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