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사람 없냐고, 다친 여자애가 목이 마르다고 물을 달라고 그래…. 시체 사이의 도구들을 가지러 가서 보니, 시체들이 뜯겨 있어. 귀가 잘려 나가고 볼이 파이고 어떤 시체는 여자 가슴에 총탄이 맞아서 피투성이고, 우리 어머니 얼굴도 귀가 잘려 나가고 볼의 살이 뜯겨 나갔더라고.”
1951년 4월 전북 순창군 쌍치면 운암리 뒷산의 숯구덩이에서 간신히 살아난 열 살 소년 설동용의 증언이다. 마을 사람들에게 총을 쏜 건 국군 11사단 20연대 2대대 군인들이었다.
쌍치면은 국군과 빨치산 간에 격전이 벌어졌던 곳이다. 8중대장은 소대장과 분대장들에게 “적을 사살하면 귀를 끊어 오라”고 지시했다. 당시 숯구덩이에서 학살당한 마을 사람들은 비무장이었고, 국군에 해를 끼치지도 않았으며, 완력이 강한 젊은 남자들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은 국군의 ‘적’이었다.
광복 이후부터 6·25전쟁까지 군경과 미군에 의해 벌어진 민간인 학살 사례를 살피는 동시에 학살이 최근까지도 국가의 시민 사찰, 감시, 사상 지배와 같은 일에 어떻게 영향을 주었는지 들여다본 책이다.
저자는 반복되는 대량학살이 전쟁의 목표이자 전투 수행의 본질이라고 봤다. 근대 국가의 정치가 이념과 종교, 인종에 따라 상대방에 대한 증오를 부추기고 극단적인 상황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또 국가들이 다른 지역의 대량학살에 개입하지 않는 이유, 유엔의 대량학살 방지 협약이 어떻게 정치적으로 왜곡됐는지도 살폈다. 저자는 연세대 국학연구원에서 일하는 사회학자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국민보도연맹 사건을 조사한 이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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