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댁에 발 끊고 ‘밥 차리는 의무’ 벗어던지자 진짜 평화가…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25일 17시 56분


#1. “경단녀? 그거 경단 만드는 떡 전문가 말하는 건가요?”

몇 년 전 회사를 관둔 이주희 씨(48)는 ‘경단녀’란 딱지에 이렇게 되묻는다. 출산·육아으로 인해 집으로 강제소환당한 여성들의 경력을 사회가 잘라먹는데 동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씨는 이런 경험담을 ‘딸로 입사, 엄마로 퇴사’(니들북)란 책으로 펴냈다.

#2. 시댁 중심의 불합리한 결혼문화를 민사린과 무구영이란 커플을 통해 다룬 웹툰 ‘며느라기’는 요즘 공분의 장으로 번지고 있다. “무구영 같은 남자는 답이 없다” “이 부부가 반드시 이혼하길 바란다” 같은 아줌마들의 ‘이혼 청원’이 빗발친다.

미투 운동을 계기로 높아진 여성문제에 대한 관심이 최근 이른바 ‘주부 페미니즘’으로 진화하고 있다. 뿌리 깊은 ‘생활 속 성차별’에 반기를 든 기혼 여성들의 목소리가 문화계 전반에서 호응을 얻고 있다. 관련 컨텐츠도 활발히 창작되고 소비된다.

특히 30~50대 기혼 여성들 얘기는 최근 책으로 봇물 터지듯 쏟아진다. 어쩔 수 없이 참고 살던 평범한 우리네와 닮았다. 김영주 씨(53)는 9남매 장남과 결혼하고 24년간 시집살이를 견디다 ‘시월드’에 사표를 던졌다. 그 시간 동안 느낀 점을 2월에 ‘며느리 사표’(사이행성)란 책으로 써냈다. 김 씨는 “주말마다 가야했던 시댁에 발을 끊고 안하면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던 ‘밥 차리는 의무’를 벗어던지자 진짜 평화가 찾아왔다”고 고백한다.

이달에 나온 ‘남편은 내가 집에서 논다고 말했다’(마음의숲)도 비슷한 문제의식을 보여준다. 결혼과 동시에 직장에서 ‘잠정적 배제인력’이 되는 여성은 정작 전업주부가 되면 페미니즘을 논할 자격도 없는 ‘잉여’로 취급받는다. 담당 편집자 송희영 씨는 “지난해부터 인기였던 페미니즘 서적들이 올해 평범한 기혼여성들의 ‘생활 속 고발’로 확장되는 추세”라며 “인터넷 연재 때부터 주부들의 댓글 반응이 뜨거웠다”고 말했다.

더 이상 참고 살지는 않겠다는 주부들의 가치관 변화는 다른 문화영역에서도 확연하다. 시어머니와 ‘맞짱’ 뜨는 며느리를 다룬 독립영화 ‘B급 며느리’(1월 개봉)가 화제를 모았고, 웹툰 ‘며느라기’는 팔로워만 23만 명이 넘는다. ‘미투 운동’처럼 심각한 성폭력의 영역이 아니더라도 ‘밥상 위’나 ‘사무실 테이블’에서 벌어지는 일상의 부당함에 본격적으로 맞서는 분위기다. 뭣보다 육아나 가사 전담, 시댁 중심 문화 탓에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기혼여성이 이런 움직임의 중심축이 되고 있는 점이 가장 큰 변화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주부 페미니즘’의 진격에는 미투 운동 등을 통해 페미니즘 감수성이 높아진 것이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잘못된 관행에 거부의 목소리를 내야한다는 ‘일상의 민주화’가 퍼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문화평론가인 김헌식 동아방송대 교수는 “한국사회도 이미 여성의 역할이나 위상이 높아졌는데 그에 역행하는 가부장적 문화가 완고하게 버티며 충돌을 빚어왔다”며 “오랫동안 묵어있던 갈등이 사회 각계에서 일제히 터져 나오는 과정”이라고 진단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를 남녀 대결이 아닌 인권 이슈로 풀길 주문했다. 구 교수는 “혁명처럼 터진 ‘미투 운동’이 실제 사회를 바꾸려면 결국 일상에서의 관행 변화가 중요하다는 측면에서 ‘생활 속 페미니즘’은 의미가 크다”며 “일부처럼 ‘성대결’로 몰고 가면 본질을 왜곡할 수 있는 만큼, 보편적 인권 문제로 다루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박선희 기자teller@donga.com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여성 리더 조명, 제2의 생 준비하는 여성 ▼

‘미투 운동’ 등으로 사회 분위기가 변화하며 여성 리더가 다시 주목을 받는다. 이에 따라 제2의 인생을 꿈꾸는 30~50대 여성들도 늘고 있다.

프리랜서 예술가 김지은 씨(36·가명)는 최근 3년간 미뤄둔 대학원 박사과정을 준비하기로 결심했다. 중·고등학교 강사를 하면서 근근이 활동을 이어가던 김 씨는 최근 예술계 선배에게서 “앞으로 교수직에서, 각급 기관장이나 리더로서 여성 일자리가 크게 늘 것이다. 미리미리 대비하라”는 조언을 들었다. 김 씨는 “활동과 공부를 병행하느라 학업을 더 이어갈 엄두를 못 냈는데, 서둘러 학위에 도전해보기로 했다”고 했다.

요즘 문화 현장의 분위기는 이런 김 씨의 말을 뒷받침한다. 일례로 국립극장장 후보 1순위로 꼽히던 연출가 김석만 씨는 ‘미투 운동’의 폭로로 교수 시절 성추행 사실이 드러나며 탈락했다. 때문에 문화계 안팎에서는 비교적 이런 오점에서 자유로운 여성 경력자가 각급 예술기관장 유력 후보로 급부상하는 분위기다.

익명을 요구한 국립예술단체 관계자는 “수사기관이 아닌 이상 남성 후보들의 수십 년 경력에서 성 추문을 일일이 조사할 수 없다. 이참에 참신한 여성 인사를 기용해 기관 이미지도 제고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팀장급도 직장 내 남녀간 의사소통을 막는 ‘펜스 룰’을 적용하지 않을 여성 리더를 선호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런 현상은 여성의 반사이익 같은 단기적 관점이 아니라 사회구조 변화라는 장기적 관점에서 정치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차우진 문화평론가는 “그간 여성들은 높은 업무실적을 올려도 남성 중심적 조직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곤 했다”며 “일련의 분위기를 ‘해프닝’으로 멈추지 않으려면 ‘유리 천장’의 붕괴와 ‘사회적 인식의 전환’이란 큰 틀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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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9

추천 많은 댓글

  • 2018-03-25 18:58:10

    우리나라에서 진정으로 여성을 탄압하는건 좌파 빨갱이들이다 최초의 여성 대통령 박근혜를 난도질 해서 감옥에 쳐넣어버렸고 요즘 성범죄 연루자 대부분은 좌빨 성향이다 유물론에 입각한 빨간 놈들은 본래 사람도 물건으로 보기에 인간의 존엄성을 모르는 짐승같은 것들이 많다

  • 2018-03-25 20:18:31

    참 한심한 글이네요. 전업주부라고 해봐야 설거지, 빨래, 청소 하루 1시간도 안되는 노동을 큰일하는 것 처럼 떠들어대며 애키우는 것을 독박육아라는 한심한 용어까지 만들어가며 지 새끼 키우는 것을 뭔 큰 일처럼 여기는 한심한 여자들. 능력없어 남자한테 붙어살면서

  • 2018-03-25 21:39:19

    그래 잘했다 그래야 나중에 시부모 죽을때 자식한테 유산 안물려주고 사회에 환원하고 천국에 들지 니가 시부모모시고 끙끙거리며 살고있어봐 시부모 안스러워서 있는거없는거 다 모아서 자식한테 물려주고 땅속으로 들어가느라 얼마나 힘들겠니. 아주 잘했다 우리사회가 점점 성숙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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