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재 교수의 지도 읽어주는 여자]나비를 사랑한 애거사 크리스티-생텍쥐페리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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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나비에 반한 작가와 국가들

고대로부터 신성하고 강인한 존재로 여겨진 나비는 희망을 상징하고, 예술가들에게는 영감을 불러일으켰다. 동아일보DB
고대로부터 신성하고 강인한 존재로 여겨진 나비는 희망을 상징하고, 예술가들에게는 영감을 불러일으켰다. 동아일보DB

김이재 지리학자·경인교대 교수
김이재 지리학자·경인교대 교수
나비에 매혹된 건 비행기 안에서였다. 무심코 잡지를 펼치자 파란 하늘에 주황색 나비 수천 마리가 나는 사진이 나왔다. 설명이 이어졌다. ‘뇌는 옷핀보다도 작고 몸무게는 몇 그램도 안 되는 나비가 오직 날아가겠다는 의지만으로 캐나다에서 미국, 멕시코까지 비행합니다. 3500여 km를 날아간 제왕나비 떼가 월동하는 멕시코 삼림이 벌목으로 파괴될 위기에 처하자 나비 애호가들이 힘을 모아 숲을 지켜냈습니다.’

제왕나비가 낮에 날아다닐 수 있는 건 애벌레일 때 독이 있는 식물을 열심히 먹은 덕분이다. 독을 품은 나비를 먹으면 즉사하니 천적들이 알아서 피한다.

나비 밀집지역은 적도와 가까운 열대·아열대기후에 속한다. 많은 나비종이 주로 열대지역에서 기원했기 때문이다. 브라질 아마존 열대우림은 크고 화려한 날개를 뽐내는 나비들의 경연장이다. 중남미 코스타리카는 전 세계에 나비 고치를 수출한다. 코스타리카에서 날개에 ‘88’ 숫자 문양이 있는 나비는 행운을 상징한다.


나비와 함께 사는 코스타리카인은 평화로운 삶을 지향한다. 오스카르 아리아스 전 대통령은 군대를 폐지해 노벨평화상을 받았고, 6·25전쟁 및 베트남전쟁 당시 징병제에 반대하는 퀘이커 교도들이 미국에서 코스타리카의 몬테베르데로 집단 이주했다. 연중 온화한 기후에, 고도에 따라 다양한 나비종이 서식하는 멕시코와 안데스산맥의 상춘기후 지역도 나비의 천국이다.

나비 표본 수출을 많이 했던 대만은 ‘아시아의 나비 왕국’으로 불린다. 해마다 겨울 남부 고산지역 계곡을 따라 이동하는 보라색 나비 떼는 진귀한 장관을 연출한다. 국기에 나비가 그려져 있는 파푸아뉴기니는 세계 최초로 헌법에 곤충을 자연자원으로 규정했다.

나비를 사랑한 사람들은 창의적 인재가 많다. 애거사 크리스티, 생텍쥐페리, 버지니아 울프가 그랬다. 소설 ‘롤리타’를 쓴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곤충학자였다. 빅토리아시대부터 나비 채집이 유행한 영국에서는 유대인 재벌 로스차일드 가문 후원으로 전 세계에서 수집한 나비들을 런던 자연사박물관에 전시했다. 찰스 로스차일드는 기차를 타고 가다 희귀한 나비를 발견하면 기차를 세울 정도로 마니아였다.

고대 그리스에서 나비는 ‘프시케’로 불리는 영혼이었고, 힌두교의 신 브라마는 나비의 변태를 보며 윤회를 상상했다. 아즈텍 문명에서 나비는 신과 인간을 이어주는 초월적 존재였다. 나치 강제 수용소에서 유대인 어린이들이 손톱으로 긁어 벽에 남긴 나비 그림은 죽음을 연구하던 정신건강의학자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에게 깊은 깨달음을 주었다. 그는 어린이 불치병 환자들을 만날 때마다 애벌레를 뒤집으면 나비로 변하는 인형을 들고 갔다. 프랑스 패션잡지 ‘엘르’의 유명 편집장이던 장도미니크 보비가 온몸이 마비되는 희귀병에 걸린 뒤 눈을 깜박여 완성한 책 ‘잠수종과 나비’는 평범한 일상을 감사하게 만든다.

알에서 깨어나 고달픈 애벌레 시절을 거쳐 절망의 고치를 뚫고 나온 세상의 모든 나비들은 그 자체가 희망의 증거가 아닐까.
 
김이재 지리학자·경인교대 교수
#나비#제왕나비#나비 밀집지역#프시케#잠수종과 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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