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그 모든게 바람 속 먼지∼ 희뿌연 봄날의 허무예찬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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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27일 화요일 맑음. (초미세)먼지가 되어.
#283 Kansas ‘Dust in the Wind’(1977년)


요 며칠 미세먼지 탓에 뿌연 세상을 보며 두 개의 캔자스를 떠올렸다. 하나는 미국 캔자스주. ‘오즈의 마법사’에서 도로시가 펑펑 울며 그리워하던 그 캔자스다. 둘째는 미국 록 밴드 ‘캔자스’.

캔자스는 유럽이 주도하던 프로그레시브록 열풍 속에서 그 미국적 변용을 역동적 음악으로 보여준 밴드다. 복잡한 변칙 박자와 우렁찬 록 사운드를 앞세우되 카랑카랑한 오르간과 목가적인 바이올린 소리를 추가해 북미 대륙 느낌을 살렸다.

캔자스를 대중에 알린 히트 곡은 ‘Point of Know Return(사진)’ 앨범에 실린, 그들로선 이례적으로 차분한 발라드 ‘Dust in the Wind’. ‘바람 속 먼지/그 모든 게 바람 속 먼지’라 노래하는 인생무상. ‘해서 뭐해’식 노래의 결정판. ‘먼지가 되어 날아가야지/바람에 날려 당신 곁으로’(가요 ‘먼지가 되어’)의 의지조차 엿보이지 않는, 그야말로 허무 예찬이다.

오죽하면 영화 ‘엑설런트 어드벤쳐’(1989년)의 키아누 리브스(테드 역)가 타임머신 타고 가 만난 소크라테스(기원전 470∼기원전 399)에게 이 가사를 읊었으랴. ‘우린 모두 바람 속 먼지라고, 이 사람아!’

그룹 캔자스는 싱겁게도 캔자스주 출신이다. 그러고 보니 도로시가 캔자스를 떠난 것도 큰 회오리 때문 아닌가! 캔자스 멤버들이 진짜 모래바람이라도 보고 노래를 만든 걸까. 섹스 피스톨스가 ‘Anarchy in the U.K.’를, 도나 서머가 ‘I Feel Love’를, 비지스가 ‘Stayin‘ Alive’를, 이기 팝과 데이비드 보위가 ‘Lust for Life’를 내놓은 격동의 1977년에 이런 허무 찬가가 나온 계기가 거기에?

어쨌든 이 곡은 좋은 통기타 연습곡이기도 하다. 전주 네 마디만은 기가 막히게들 칠 수 있는 곡들 있잖나. ‘Romance’ ‘Tears in Heaven’ ‘Stairway to Heaven’, 그리고….

오랜만에 통기타를 꺼냈다. 영롱한 분산화음을 퉁기며 노래를 시작하려다 또 첫 박을 놓친다. 꺼낸 기타를 도로 넣는다. 쌓인 먼지나 닦아서.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미세먼지#록 밴드 캔자스#point of know retu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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