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꽃망울이 터지기 직전이다. 엊저녁에 남겨둔 식은 밥과 국으로 연명한다면 올 한 해도 꽤나 퍽퍽하고 지루한 삶이 연속될 것이다. 일상의 루틴을 지키면서도 소소한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곳, 오늘 하루쯤 프렌치 런치로 테이블을 바꾸자. 오감이 꽃망울처럼 열리는 짜릿한 기분에 빠질 것이다.
프렌치 요리라고 해서 사치스러운 레스토랑을 떠올릴 필요는 없다. 요즘은 아담하고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건강한 요리를 선보이는 비스트로(Bistro)가 미식 트렌드를 이끌고 있다. 이곳 요리에는 대략 10가지 특징이 반영되는데 단순함, 최소한의 익힘, 신선한 재료 활용, 심플한 메뉴, 절제된 마리네이드, 가벼운 소스 지향, 각 지역 요리의 다양성 추구, 새로운 조리법 시도, 창조성, 영양학적 접근 등이다.
이런 근사한 요리를 맛보기 위해 프랑스까지 갈 필요는 없다. 서울에도 꽤 훌륭한 비스트로가 있으니까. 이곳들은 한국의 제철 식재료를 적극 활용하고 프랑스 정통 조리법의 맥을 잇되 한국인의 입맛에 맞도록 창조성을 발휘한다. 국산 양파로 맛을 낸 어니언 수프(la soupe a l‘oignon)는 전채식의 정점이다. 양파를 버터에 갈색이 나도록 볶다가 쇠고기 육수를 넣고 한소끔 끓인다. 그 위로 그뤼에르 치즈를 뿌려주고 오븐에서 갈색이 나도록 구워주는 그라탱으로 마무리한다. 이 뜨끈하고 달짝지근한 수프를 한 모금 삼키면 쓰린 속을 달래주는 것이 장터 노포점의 해장국 못지않다.
메인으로는 한돈이나 닭고기를 적극 활용하는데 겉껍질은 바삭하게 굽고 속살은 뭉근하게 익혀낸다. 단백질 덩어리를 요리로 둔갑시키는 것이 소스의 마법이다. 토마토와 채소 육수가 어우러지는 프로방스식 소스는 맑은 감칠맛, 맑은 육수에 밀가루와 버터로 만든 루(roux)로 농도를 조절하는 베샤멜소스는 크리미한 풍미를 연출한다. 식사의 끝은 디저트가 담당한다. 특히 크렘브륄레는 신선한 커스터드 크림으로 혀끝을 살살 녹인다.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에 자리한 ‘르셰프블루’는 프랑스 대사관 수석 셰프 로랑 달레의 레스토랑이다. 건강하고 신선한 재료를 프랑스 정통 레시피로 조리해 매일매일 다른 요리를 선보인다. 서울 서초구 ‘태번38’의 고병욱 셰프는 클래식한 어니언 수프에 코냑과 3종의 와인을 첨가해 고급스러운 풍미를 더했다. 부산 해운대구에서는 푸른 바다가 환히 들어오는 ‘메르씨엘’에서 즐기자. 프랑스의 스타급 디저트만 모아 3단 트레이로 차려낸 애프터눈 티세트가 낭만적이다.
임선영 음식작가·‘셰프의 맛집’ 저자 nalgea@gmail.com
○ 르셰프블루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길 27-1, 02-6010-8088, 런치3코스 3만 원
○ 태번38 서울 서초구 명달로22길 12-12, 02-522-3738, 런치3코스 3만8000원
○ 메르씨엘 부산 해운대구 달맞이길65번길 154, 051-747-9845, 프렌치 풀 디저트세트 2만5000원(2인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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