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치니의 세 번째 오페라인 ‘마농 레스코’(1893년)는 두 번째 막에서 이 작품을 처음 접하는 사람을 의아하게 만듭니다. 1막에서는 수녀원에 들어가려는 젊은 여인 마농을 기사 데그리외가 유혹해 함께 도망칩니다. 그런데 2막이 열리면 마농은 데그리외와 함께 있지 않고 부자 제론테의 집에 첩으로 들어가 있습니다. 별다른 설명도 없습니다. 왜 이렇게 된 걸까요?
원작 소설에서는 마농이 데그리외와 살다가 금은보화를 앞세운 제론테의 꼬임에 빠져 말없이 데그리외를 떠나버립니다. 그런데 오페라로 만들면서 그 내용을 건너뛰어 버린 겁니다. 지나치게 과감한 생략 같지만 여기엔 이유가 있었습니다.
푸치니의 ‘마농 레스코’에 9년 앞서, 프랑스 작곡가 마스네가 1884년 ‘마농’을 파리 오페라 코미크에서 발표했습니다. 마스네는 이탈리아에서도 인기가 높은 작곡가였습니다. 베르디를 전속 작곡가로 둔 흥행사 리코르디가 마스네의 인기 때문에 수입이 떨어지는 것을 걱정할 정도였습니다. 마스네의 ‘마농’ 역시 이탈리아인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습니다.
푸치니가 이 작품과 같은 소재로 세 번째 오페라를 쓰겠다고 하자 리코르디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은 ‘마스네 작품의 아류로 묻혀버리게 될 거다’라며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푸치니는 자신감을 보였습니다. “마스네의 마농은 분 냄새나는 프랑스인의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탈리아인 특유의 서정으로 승부하겠다.”
하지만 역시 마스네의 ‘마농’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같은 원작을 사용하면서도 4막(마스네의 마농은 5막)의 구성은 달리 보이게 하려 애를 썼습니다. 이 때문에 줄거리 전개에서 중요한 ‘데그리외와의 동거 장면’까지 빠지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마스네의 ‘마농’과 푸치니의 ‘마농 레스코’는 전 세계 오페라 극장에서 나란히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국립오페라단은 5∼8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마스네 ‘마농’을 공연합니다. 히로인 마농 역에 소프라노 크리스티나 파사로이우와 손지혜, 기사 데그리외 역에 테너 이스마엘 조르디와 국윤종이 출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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