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 하면 생각나는 마을이 있다. 강원 삼척시 두타산 인근의 고든내마을은 옛날에 쌀은 없고 콩만 흔해서 콩을 어떻게 하면 밥과 비슷하게 먹을 수 있을까 늘 궁리하던 곳이었다.
가장 손쉽게 만드는 것이 두부였기에 두부를 만들고 남는 비지로 비지떡을 만들거나 그 떡을 구워 만든 비지떡구이가 일종의 별식이었다. 콩이 많으니 아낄 필요도 없었다. 메주도 일반 메주의 2.5배 크기는 될 정도로 큼지막하게 만들었다. 이곳에서는 간장 담그고 건진 메주로 만든 된장이 아니라 메주 자체를 듬뿍 빻아 넣어 담그는 막장을 근래까지 된장이라 부르며 먹어왔다. 간장에서 건진 메주는 어디에 사용하는지 물으니 “그건 돼지나 먹지”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늦가을 콩 수확이 끝났을 때 마을에 가보니 콩가루가 있었다. 포슬포슬한 아이보리색 가루는 지금까지 본 콩가루 중 최고의 상태였다. 인절미 떡고물인 볶은 콩가루만 친숙해 콩가루로도 음식을 만들 수 있냐고 기대 없이 물어봤다. 그랬더니 어르신 한 분이 콩가루와 동치미국물을 마을회관으로 가지고 와 국을 끓이기 시작했다. ‘콩갱이국’이란다. 국이 뭉글뭉글한 상태가 되었을 때 동치미국물로 간을 맞추면 완성이다. 추가로 빨간 김칫국물을 넣으면 빨간콩갱이국이 된다. 순두붓국처럼 보이는데 막상 먹어 보면 콩가루의 감촉이 남는다. 그러나 절대 부담스럽지 않다. 또 김칫국으로 간을 하니 시원할 수밖에 없다.
콩가루로 만든 국을 제주도에서도 먹었던 적이 있다. 제주의 옛 여인들은 바다에서 물질하고 농사일도 하면서 아이 키우기, 집안일을 하는 1인 3역 또는 4역까지 감내하며 살았다. 바쁜 해녀들은 평소엔 거친 잡곡밥을 먹는데 뻑뻑하지 않을 용도로 간단한 국만 끓여먹다가 추수가 끝난 뒤 농한기가 되면 아주 약한 불에 콩가루반죽을 넣어 뭉근히 끓이는 여유의 국을 만들어 먹었다. 제주도에서는 이를 콩국이라 부르는데, 단어만 들으면 육지 사람들에게는 시원한 여름 콩국수만 떠오르게 된다.
삼척 콩갱이국과 제주 콩국은 쌀이 귀한 시절 콩으로 만든 ‘지혜의 국’이다. 이제는 서울에서도 찾아보기 힘들어져 거칠게 간 콩비지탕을 파는 곳만 만나도 콩가루국이 떠오른다.
이윤화 레스토랑가이드 다이어리알(diaryr.com) 대표
○ 명도암수다뜰, 제주 제주시 명림로 164, 064-723-2722, 콩국두부정식 1인 8000원(2인 이상 주문)
○ 콩리, 경기 양평군 옥천면 신복길 99, 031-771-7562, 옥천콩찌개 7000원
○ 제일콩집, 서울 노원구 동일로174길 37-8, 02-972-7016, 콩탕 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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