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요즘 딱 듣기 좋은 헨델의 ‘나무 그늘 아래’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4월 10일 03시 00분


나무들이 아름다워지는 4월입니다. 지난주 목요일인 5일이 식목일이었죠. 2006년 공휴일에서 빠진 뒤로는 사람들의 머리에서 잊혀진 날이 된 듯합니다. 마침 4월 초가 건조해지기 십상이어서 산에 가지 않는 것이 오히려 산불 예방에 도움이 된다고도 합니다만, 나무를 사랑하고 자연을 살리는 마음만은 계속됐으면 싶습니다.

나무를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 담긴 노래도 있습니다. 헨델(사진)의 오페라 ‘세르세’에 나오는 ‘푸른 나무 그늘 아래(Ombra mai fu)’가 그런 노래죠. 페르시아왕 세르세(크세르크세스)가 플라타너스 그늘 아래 쉬다가 ‘나무 그늘이 이렇게 달콤하게 느껴진 적이 없다’고 찬미하는 아리아입니다.

이 노래가 나오는 ‘세르세’는 1738년 4월 15일 런던에서 초연한 뒤 250년이나 잊혀졌던 오페라입니다. 1979년에야 처음 전곡 녹음이 이뤄질 정도로 오페라는 인기를 얻지 못했지만, 유독 나무 사랑의 마음을 담은 노래 ‘푸른 나무 그늘 아래’만은 19세기에 재발견돼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사람들이 노래 가사에는 별 관심이 없었던 탓에 ‘헨델의 라르고’라는 어중간한 이름으로 알려지기도 했죠. 이 노래는 오페라 ‘세르세’ 전곡이 재발견되기 전 우리나라 중고교 음악 교과서에도 실렸습니다. 1906년 캐나다 발명가 레지널드 페슨든(1866∼1932)이 세계 최초의 라디오 방송을 시작했을 때 가장 먼저 ‘전파를 탄’ 노래도 이 노래였다고 합니다.

다가오는 일요일인 15일은 마침 오페라 ‘세르세’가 세상에 나온 지 280년 되는 날이군요. 학생 때 가창 시험에서 이 노래를 불러본 분도 많을 듯합니다. 우연인지 이 노래의 ‘주인공’인 플라타너스는 전국 초중고교 교정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나무이기도 하죠. 저도 일요일에는 학창 시절 생각을 하며 이 노래를 들어보겠습니다.

누구의 노래로 들어볼까요. 지난해 11월 55세의 아까운 나이에 뇌암으로 세상을 떠난 러시아 바리톤 드미트리 흐보로스톱스키의 음반을 플레이어에 올려놓고 싶습니다. 그늘에서 만족스럽게 쉬었던 오페라 주인공 세르세 왕처럼, 그도 다른 세상에서 편히 쉬고 있을까요.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클래식#헨델#오페라 세르세#푸른 나무 그늘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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