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랑 씨(34)는 최근 ‘씀’이라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에 자신의 단편을 게재했다. 글감이 주어지면 이용자들이 자유롭게 글쓰기를 하는 앱이다. 종이로 된 문예지도, 출판사가 운영하는 블로그도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 만들고 사용하는 앱에 작품을 발표한다? 정 씨는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하루 이용자가 수만 명이더라고요. 그 사람들이 제 작품을 볼 수 있다는 거잖아요!”
친환경 디자이너와 외계인 남자친구의 사랑이야기(‘지구에서 한아뿐’), 신도시 주변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친구들의 성장통(‘이만큼 가까이’), 사립학교의 보건교사이자 퇴마사인 안은영 선생님의 악령 퇴치 이야기(‘보건교사 안은영’), 수도권 한 대학병원 안팎의 사람 50명이 겪는 사건과 고민들(‘피프티 피플’)…. 그는 종잡을 수 없는 작가다. 순문학과 SF, 판타지를 넘나들면서 작품을 쓴다.
작가가 되기까지의 그의 삶도 종잡을 수 없었다. 역사교육과에 들어갔지만 부단히 문을 두드렸던 건 광고와 마케팅 분야였다. 구두회사의 마케팅 공모전에서 수상했고, 아이스크림 회사에서 대학생 마케터로 일하기도 했다. 트렌드 조사업체 인턴으로도 근무했다. 언어로 뭔가를 만드는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그때까지 작가를 꿈꾼 건 아니었다. 성인이 돼서도 띠동갑 남동생한테 동화책을 읽어줘야 하는 누나였던지라, 30여 군데 취업에 실패하고는 아동물 출판사로 눈을 돌렸다. 아동문학 편집자 자리가 없어졌다며 한국문학 편집자로 일하라는 권유를 받게 되면서 소설가의 길과 가까워졌다. “생각해보면 뭘 그렇게 열심히 살았나 싶다니까요. 어차피 소설가가 됐을 텐데”라면서 정 씨는 깔깔 웃었다.
정 씨는 순문학과 장르문학 출판사의 러브콜을 두루 받고, 문학상을 수상하고, 대중 독자들에 대한 저변도 넓혀가고 있다. ‘순혈’만을 고집했던 문단의 관습이 무너지는 최전선에 그가 있다. “지금까지는 소수의 주체들에 의해 문학의 흐름이 결정됐다. 주요 문예지, 주요 문학출판사, 유명 어른들. 최근 들어선 한국 문학과 독자들의 사이가 가까워진 것 같다. 독자가 원하는 것을 문학이 수용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이렇게 기존의 질서와 권위가 해체되는 과정이 “재미있다”고 했다. 젊은 작가다운 감각이었다.
그는 21세기에도 문학의 역할은 오롯하다고 했다. 영화나 드라마 같은 서사 장르는 돈이 원하는 이야기밖엔 할 수 없지만 소설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서사 생태계의 다양성을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문학이 없고 다른 장르만 있는 서사의 세계를 생각해 보세요. 음…, 좋지 않을 겁니다!”
‘취준생’의 마음고생을 만만치 않게 겪었던 그이다. 때로 작가가 평생의 직업이 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한다고 정 씨는 털어놨다. 독자는 언제나 미래의 가치를 추구하며 작가는 그보다 몇 년 이상 앞서가야 하는데, 숨 가쁘게 변화하는 시대를 맞아 이에 대한 고민이 깊은 모습이었다. “많은 예술작품이 당대에는 비난받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고전으로 자리 잡았어요. 시간을 견디고 기억되려면 시대를 앞서가면서 미래의 가치를 담보하는 작품이 돼야 하겠지요. 그런 소설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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